‘용감한 판사’ 한 명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폭주를 막아 세웠다. 진보 성향의 젊은 판사가 아니라 올해 70세인 깐깐한 보수파 법관이다. 테러를 막는다고 무슬림 입국을 원천봉쇄하는 ‘꼴통 보수’가 아니라 원칙을 중시하고 사회적 약자 편에 설 줄 아는 ‘따뜻한 보수’다.
제임스 로바트(사진) 워싱턴주 서부 연방지방법원 판사는 지난 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효력을 미국 전역에서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워싱턴주와 미네소타주, 일부 대기업(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익스피디아)이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미국 입국 금지 조치가 전격 중단돼 이들 나라 출신자들의 미국행 비행기 탑승이 재개됐다. 미 법무부가 시애틀 연방지법의 결정을 무효화해 달라고 연방항소법원에 긴급 요청했으나 4일 항소법원도 이를 기각했다.
비록 잠정적으로만 제동을 건 것이지만 기세등등한 트럼프에게 겁도 없이 강펀치를 날린 로바트 판사에게 관심이 쏠린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나와 30년 동안 변호사로 명성을 쌓은 로바트는 2004년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의해 연방법원 판사로 지명됐다. 그는 이전부터 공화당에 후원금을 내던 보수파였고 공화당 정권이 지명한 후보였음에도 상원에서 만장일치로 인준됐다.
인준 청문회에서 민주당 패티 머리 의원은 “지역사회 불우 청소년을 도운 이력을 보면 관대한 성품을 지녔다”고 칭찬했다. 로바트는 시애틀 지역 불우 어린이에게 정신건강 치료를 해주는 기관의 대표를 지냈고, 기관 소속 아이들 중 6명을 직접 입양해 키웠다.
공화당 오린 해치 의원은 “로바트는 사회적 약자들에게 무상으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특히 동남아시아 난민을 대변해 왔다”고 소개했다.
당시 청문회에서 “권리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돕겠다”고 했던 로바트 판사는 자신의 말을 철석같이 지키고 있다. 지난해 8월 경찰의 흑인 과잉진압 관련 심리에서 흑인 시위대의 모토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그대로 인용해 화제가 됐다.
이번 반이민 행정명령 관련 심리에선 정부 측 변호인에게 입국 금지 대상인 7개국 국적자가 9·11 이후 테러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변호인이 “모르겠다”고 하자 로바트 판사는 “‘그런 적이 없다’가 대답이라면 당신은 7개국 출신자로부터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혀 뒷받침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질타했다.
변호사 시절 동료였던 존 매케이는 로바트 판사에 대해 “매우 신중한 법관으로 법률을 보는 관점은 보수적인데 법률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따라 판결하려 노력한다”고 평가했다. 이어 “법률 검토는 보수적으로 하지만 법 적용에 있어선 언제나 용감했다”고 소개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투데이 포커스] ‘트럼프 폭주’ 세운 용감한 老판사
입력 2017-02-05 17:39 수정 2017-02-05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