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급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행정명령 시행을 잠정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빗장은 풀렸지만 혼란은 여전하다. 법무부는 즉각 항소했고, 항소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트럼프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에게 문을 열어줬다”고 강력 반발했다. 7개국 무슬림은 서둘러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등 ‘입국 러시’를 이뤘다. 미국 주요 공항에 이들을 환영하는 인파가 모였다.
시애틀 연방법원은 3일(현지시간)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의 입국과 비자 발급을 금지한 행정명령의 시행을 중단하라고 결정했다. 반이민 행정명령이 발동된 지 1주일 만이다. 미 전역에 걸쳐 행정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킨 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워싱턴 주정부는 지난달 30일 연방법원에 반이민 행정명령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미 국무부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합법적인 비자 소지자의 미국 입국을 허용했다. 또 행정명령으로 취소된 비자 6만개가량을 원상회복했다고 밝혔다. 세관국경보호국은 “다시 평상시대로 업무를 보라”고 통지했고, 각 항공사는 행정명령 대상자의 미국행 여객기 탑승을 재개했다.
샌프란시스코 제9연방항소법원은 4일 밤 ‘시애틀 연방법원의 결정을 무효로 해 달라’는 법무부의 항소도 기각했다. 대신 법무부의 주장을 담은 문서를 6일 오후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앞서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법무부가 ‘터무니없는(outrageous)’ 법원 결정의 효력을 정지할 것을 긴급 요청할 것이다. 적절하고 합법적인 대통령 행정명령을 방어하겠다”고 밝혔다.
플로리다주 마라라고 리조트로 가족 휴가를 떠난 트럼프는 취재진에게 “우리가 승리한다. 이 나라의 안전을 위해 우리가 이긴다”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입국금지 행정명령이 중단되는 바람에 나쁜 의도를 가진 사람도 미국에 들어올 수 있게 됐다”며 “정말 끔찍한 결정”이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행정명령의 효력을 중지시킨 제임스 로바트 판사에게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미국의 법 집행력을 빼앗은 소위 판사라 불리는 자의 의견은 터무니가 없다”며 “한 나라가 안전과 보안상 이유로 입출국을 통제할 수 없다면 이는 큰 문제”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반이민 행정명령으로 입국이 금지됐던 7개국 무슬림은 미국행 발걸음을 재촉했다. AP통신에 따르면 예멘 출신 가족은 비자가 없는 두 자녀를 친척에게 맡긴 채 서둘러 뉴욕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라크 정부 관계자는 “미국에 입국하려는 인파가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몰렸다”고 전했다. 시민단체 아랍미국시민권연맹은 신속한 미국 입국을 권고했다.
미국 입국이 다시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전하다. 7개국 무슬림의 미국행 여객기 탑승을 재개한 루프트한자, 에미리트항공 등은 “미국 입국 규정이 예고 없이 변경될 수 있다”고 공지했다.
다시 미국을 찾은 무슬림을 위한 환영행사가 미 전역의 공항에서 열렸다. ‘모두를 위한 자유와 정의’ ‘우리의 문과 마음은 열려 있다’ 등 팻말을 든 이들이 뉴욕 존 F 케네디, 워싱턴 덜레스, 시카고 오헤어 등 주요 공항에 모였다. 입국장을 찾은 변호사들은 무슬림들에게 법률 지원을 약속했다. ‘피난처 도시(sanctuary city)’ 로스앤젤레스의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는 반이민 행정명령 반대 집회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트럼프 “잠재적 테러범에 문 열어준 끔찍한 결정” 반발
입력 2017-02-05 18:35 수정 2017-02-06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