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교회의 정치활동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피력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목회자 등 신앙인의 자유를 적극 보호하겠다는 취지였지만, 엄격한 정교 분리 원칙을 명확히 한 미국헌법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란 비판이 빗발치는 양상이다. 이른바 ‘벚꽃 대선’을 앞둔 국내에서도 교계의 정치활동과 관련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회 정치참여 허용” 왜
트럼프는 지난 2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 연설에서 “미국은 신앙인들의 국가이지만 종교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면서 “교회와 같은 비영리단체들이 비과세 혜택을 받는 대신 정치적 활동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한 ‘존슨 수정헌법’ 조항을 완전히 폐기하고 신앙의 대표자(목사)들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존슨 수정헌법 조항은 1954년 제정됐다.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이 상원의원 시절에 만든 세법 조항으로 교회를 비롯해 세금면제 혜택을 받는 모든 비정부기관(NGO)은 선거운동에 참여하거나 특정 후보 지지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것이다. 목사 등 성직자가 이를 어길 경우 해당 종교기관의 면세 혜택을 박탈하는 법으로 미국의 정교 분리 원칙을 강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줄곧 이 조항의 폐지를 주장해왔다.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목적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8월부터 줄곧 “교회가 우리 정치에 많은 기여를 했음에도 법이 그들의 발언권을 막고 있다”며 존슨 수정헌법 조항의 폐기를 주장해왔다.
1789년 연방 헌법을 제정한 미국은 1891년 연방 헌법 수정안을 추가 가결했다.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국교 금지 조항을 명시하면서 정교 분리를 헌법으로 확정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편, 다양한 종교와 종파의 정치적 입장으로부터 정치 자체를 분리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 조항에 대한 법적·신학적 논쟁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종교 전쟁 부추기나
트럼프의 존슨 수정헌법 조항 폐기 발언은 반(反)이민 행정명령에 이어 교계 안팎의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다. 미국사회의 기독교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취지와는 별개로 “교회에 낸 성도들의 헌금이 정치후원금으로 사용돼선 결코 안 된다”는 우려부터 “교회가 정치세력화하면 종교 본연의 역할이 훼손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무엇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 이슬람 기조와 더불어 세계 전역에 이슬람을 상대로 한 ‘신(新) 십자군전쟁’을 부추길 것이란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미국 기독교 여론조사기관인 라이프웨이리서치의 조사(2015)에 따르면 미국인 10명 중 약 8명(79%)은 “목사가 설교 중에 특정 정치인(또는 후보)을 지지하는 발언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회(또는 목회자)의 정치참여에 대한 정서는 국내 교계도 부정적이다.
김선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교수는 5일 “억압받고 있는 개인의 신앙 자유는 회복되고 보장받아야 마땅하다”며 “하지만 존슨 수정헌법 조항 폐지가 특정 종교의 우월적 지위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양희송(청어람ARMC) 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트럼프 정부의 존슨 수정헌법 조항 폐지 주장은) 교회 강단에서 특정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를 당연시 여기게 만들고, 대중을 특정 정치 세력으로 몰아가는 시대가 열릴 수 있게 하겠다는 뜻”이라며 “우리나라에 미칠 영향이 두렵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거침없는 트럼프 ‘정교분리’ 흔들다
입력 2017-02-06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