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합에 피땀 쏟은 ‘韓赤맨’

입력 2017-02-05 19:56 수정 2017-02-06 00:49

시민사회계 원로인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4일 오전 노환으로 소천했다. 향년 94세.

서 전 총재는 1923년 평안남도 덕천 출생이다. 어릴 적부터 독서를 즐기며 식견을 쌓은 고인은 1945년 광복을 맞아 ‘공부를 더하겠다’는 뜻을 품고 상경했다. 서울에서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해 김구 선생과 이범석 장군 등 독립운동가와 교류했으며 장준하 선생과 함께 종합교양지 ‘사상(思想)’을 출간했다.

한적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53년이다. 서 전 총재는 청소년국장을 지내며 청소년적십자사를 조직했다. 1962년에 당시 고등학생이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미국 방문 프로그램에 참여시켜 외교관의 꿈을 키우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남북관계 개선에도 힘썼다. 서 전 총재는 1972년 한적 사무총장에 올라 그해 8월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에 대표로 나섰다.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던 시절, 한 외부 강연에서 “북한에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는 파격 발언을 하기도 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직접 구급차를 타고 광주에 내려가 구호활동을 폈다. 이후 흥사단 이사장,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장,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고문 등을 역임했다. 1988년에는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을 맡았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맡으며 돌연 정계에 진출했다. 그해 16대 총선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이듬해인 2001년 제22대 한적 총재로서 20여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갔다. 총재 임기를 마친 뒤에도 신사회공동선운동연합 이사장 겸 상임대표, 미래사회와종교성연구원 이사장, 세계선린회 이사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히 활동하며 원로 역할을 했다.

반 전 총장을 비롯한 각계 인사들은 5일 빈소를 찾아 고인을 기렸다. 반 전 총장은 빈소에서 서 전 총재와의 오랜 인연을 회상하며 눈물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청소년적십자(RCY) 단원 출신이다. 반 전 총장은 당시 인연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언급하며 고인을 ‘친아버지’에 비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 황우여 전 교육부총리 등도 조문했다. 고인은 어귀선 여사와 결혼해 슬하에 아들 홍석·유석·경석씨, 딸 희경씨 등 3남1녀를 두고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7일 오전 9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