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16일 오전 7시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회와 예배를 갖기로 했다. 최홍준 목사가 그 내용을 회원들에게 설명하자 한마음으로 동참했다. 기도회는 자원하는 목사가 차례로 나와 5분 정도 찬송 말씀 기도를 인도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특별순서로 주선애 교수가 학창시절 평양교회를 회상하고, 이만열 교수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을 특강했다. 김양재(큐티선교회) 대표의 QT 특강도 곁들였다. 이 기도회를 통해 강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성도들은 회개와 결단의 눈물을 흘렸다. 북한에서는 당이 정해준 장소 외에는 예배를 금지하고 있어서 어쩌면 이 자리가 순교의 제단이 될지도 모를 일인데도 모두가 담대했다.
오전 11시가 되자 이정익(신촌성결교회) 목사의 인도로 예배가 시작됐다. 모테트합창단이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찬양하자 마음에 불안감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성령이 주시는 위로와 평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피아노는 상한 심령을 보듬는 천상의 선율이었고, 모테트의 찬양은 잠든 평양을 깨우는 힘찬 진군가였다. 이어서 최홍준 목사가 ‘남북화해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라는 설교 중에 “나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이 평양에서 순교한 신앙의 선배들처럼 주일성수를 위해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선포하는 모습은 마치 평양대부흥운동을 이끈 길선주 목사처럼 위엄과 능력이 가득 찬 얼굴이었다.
누군가 다가와서 성찬식을 갖자고 제안했다. 토스트 한조각과 대형 글라스에 담긴 포도주로 성찬에 참여하는 모습이 CTS TV 화면에 담겼다. 찬송 기도 설교 성찬식 등 순서마다 은혜가 넘쳤다. 계속되는 기도회와 예배에 북측은 200여 명의 요원을 배치하고 찬송이 밖에서 들리지 못하도록 음악을 크게 틀었지만 예배는 일절 방해하지 않았다. 식당 종업원과 안내원들은 예배가 신기한지 지켜보고 있었다.
예배가 끝날 무렵 북측은 봉수교회와 칠골교회로 안내할테니 호텔에서의 예배는 중단해달라고 제안했다. 이때가 오후 1시 7분으로 오전 7시부터 시작된 예배가 6시간을 넘긴 상황이었다. 광고시간에 이 소식을 전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운 영적 전쟁에서 거둔 승리의 개가였다.
이날 예배는 월드컵 열기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교회사는 물론 남북관계사에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아무리 당시를 회상해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어떻게 평양 한복판에서 그런 엄청난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최홍준 목사에게 전화로 그때의 소감을 물었다. 첫 마디가 “김 박사, 그건 우리가 한 게 아니고 성령이 하신 일이야”하고 고백했다. 이어 2006년 광주순복음교회에서 열린 통곡기도회에 강사로 갔다가 만난 탈북자가 그 현장을 아는 보위부 요원이었다는 사실도 증언했다. 최 목사는 북한에 가서도 “목사는 모가지(목)를 내놓고 사는 사람”이라면서 보위부 요원에게 4영리를 꺼내놓고 전도했다. 기도회를 첫 번째로 인도한 유관지 목사는 극동방송에서 근무하며 북한선교에 헌신한 분으로 그날도 필자와 생사를 함께 하겠다는 유서를 남겼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역자의 눈물과 순교자의 피로 확장되는 것이다. 지난 일을 회상하니 평양에 억류되어 있는 동갑내기 친구 임현수 목사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형석 <14> 호텔서 6시간 예배… 북, 그제야 “교회 안내하겠다”
입력 2017-02-06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