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이관세] 첫 단추 잘 끼워야

입력 2017-02-05 18:5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미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며 ‘힘을 통한 평화가 외교정책의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한반도 관련 미국의 주요 정책결정자들도 북핵 등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강경 입장을 드러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국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악당들이 세계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고 했고,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장도 대륙간탄도탄(ICBM) 선제타격 방안 등을 거론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력을 바탕으로 강한 대북정책을 추진할 경우 한반도 긴장 수위는 높아질 것이다. 북한도 ICBM 시험발사 등 도발로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매년 2월 하순부터 약 2개월 동안 실시되는 한·미 연합 키리졸브(KR) 및 독수리(FE) 연습이 올해 한반도 정세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지 않는 한 핵무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8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은 오바마 행정부가 1월 공식 출범해 대북정책 결정자들이 정해지지 않은 2009년 4월 은하 2호 장거리 로켓을 쏘아올리고, 이어서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로 인해 오바마 행정부가 ‘전략적 인내’ 정책을 추진케 됐으며, 미·북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만약 2017년 상반기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대북정책 수립 전에 북한이 ICBM을 발사하는 등과 같은 도발을 한다면 미국은 강경한 대응책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또 다시 출발부터 관계가 꼬여들어갈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매티스 국방장관은 한국과 일본을 방문해 동맹의 공고함을 확인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한반도 정세의 시급성과 중요성이 감안된 결과다.

바로 지금이 한반도 정세의 경색 국면을 바꿀 수 있는 기회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외정책 구상 정교화 작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대결 상황이 재현되면 어려운 형국에 휘말릴 개연성이 크다. 북한도 신중히 대처하지 않고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나간다면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다각도로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특성을 주시하고 이를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힘을 통한 평화와 외교’ ‘군사력 강화’ 등은 외교 문제를 강력한 군사력을 전제로 해결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여기에는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전격적인 협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내포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방법론을 배제하지 않도록 우리가 적극 유도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의 대외정책 기조는 강경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 중에는 공화당 정부 시절 이뤄낸 전향적 성과들이 적지 않다. 닉슨 행정부는 과감하게 중국과의 수교를 추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강력히 비판했던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Ⅱ’ 타결과 나아가 핵무기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는 세계에 배치한 미국의 전술 핵무기 대부분을 본국으로 철수시켰다.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와 중국이 실질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대화와 협상에 대해 북한이 호응하지 않거나 이를 기만할 경우에는 제재와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군사적 옵션의 위엄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군사력을 강조하며 자칫 ‘모험주의’로 비칠 수 있는 발언만 내놓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실제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모색할 때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이관세 (경남대 석좌교수·전 통일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