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대통령 코앞 연풍문서 대치하다 ‘작전상’ 철수

입력 2017-02-03 17:49 수정 2017-02-03 21:04
청와대 압수수색에 나섰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청와대 거부로 압수수색을 시도한 지 5시간여 만에 연풍문을 나오고 있다. 청와대 측은 군사상 비밀 시설이라는 점, 공무상 비밀이 다수 보관된 장소라는 점 등 이유를 들어 특검팀의 경내 진입을 막았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현직 대통령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특검이 시도한 청와대 압수수색이 양측의 치열한 신경전 끝에 일단 무산됐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청와대 측은 4시간55분 동안 대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영장 유효기간을 1차 수사 종료 시점인 오는 28일로 잡은 특검은 집행 시점을 재차 모색키로 했다. 그러나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특검의 압수수색 협조 요청을 거부하고 청와대가 계속 버틸 경우 자료 임의제출 방식도 최후수단으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전날 밤 서울중앙지법에서 압수수색영장을 받은 특검은 3일 새벽부터 긴박하게 움직였다. 박충근·양재식 특검보는 이날 오전 9시5분쯤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을 나섰다. 다소 굳은 표정의 두 특검보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집행팀 20여명이 청와대 연풍문 앞에 도착한 시각은 9시51분. 연풍문은 청와대 관람객 등 외부인이 출입절차를 밟는 청와대 민원안내소다.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던 역대 검찰과 특검 수사팀도 모두 이곳을 넘어 경내에 강제 진입하는 데는 실패했었다. 박 특검보는 오전 10시 연풍문 내에서 민정수석실과 경호실 직원에게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출범 초기부터 청와대 압수수색 불가피성을 거듭 강조해 왔던 특검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수사와 관련된 청와대 수석실과 비서실, 차량, 내부 전산서버 등 10곳을 대거 압수수색 대상으로 적시했다.

오전 10시부터 특검 관계자 6명과 청와대 관계자 6명은 연풍문 2층 회의실에서 협의를 진행했지만 서로의 입장차만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청와대는 경내 진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오후 2시 압수수색 불승인 사유서를 박 특검보에게 제출했다. 한광옥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형사소송법 110·111조를 근거로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라는 이유를 들었다. 특검이 정례 브리핑에서 유감을 표명하면서 신경전은 이어졌다.

특검은 현장회의 끝에 오후 2시55분 철수를 결정했다. 영장 집행기간을 오는 28일까지로 통상(1주)보다 길게 받아둔 만큼 재집행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이번처럼 청와대가 막아설 경우 압수수색을 강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특검은 오후 5시 황 권한대행에게 청와대 압수수색 협조를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이규철 특검보는 “황 권한대행에게 불승인 사유서의 부적절한 점을 제시하고 그 판단을 받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특검의 협조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황 권한대행은 특검팀의 공문이 발송되기도 전인 오후 4시9분쯤 출입기자들에게 “비서실장과 경호실장이 관련 법령에 따라 특검의 압수수색에 응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청와대 경내 진입을 승인할 뜻이 없다는 것이다.

특검이 결국 전례처럼 임의제출 방식을 활용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이날 집행팀은 압수수색영장을 제시하면서 수사팀에 필요한 서류목록까지 모두 제시했다. 이 특검보는 “우리가 제시한 서류목록을 모두 제출한다면 임의제출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의 집행을 거부하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 있다는 관점에 대해서는 “특검이 검토를 해봐야 할 문제지만 명백히 (공무집행방해에) 해당되는지 현재로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