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볼 전쟁 뒤에 ‘反트럼프 전쟁’

입력 2017-02-03 23:47 수정 2017-02-04 00:06
미국미식축구리그(NFL)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의 쿼터백 톰 브래디(왼쪽)가 2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휴스턴 NRG 스타디움에서 제51회 슈퍼볼에 앞서 열린 팀 훈련 중 미소를 짓고 있다. 오른쪽은 3일 애틀랜타 팰컨스의 쿼터백 맷 라이언이 같은 장소에서 훈련하는 모습. 가운데 작은 사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고기 맛 아는 놈, 고기 처음 먹고 싶은 놈, 그리고 트럼프’

미국 최대 스포츠인 미식축구리그(NFL)의 챔피언결정전 ‘슈퍼볼’이 오는 6일(한국시간) 휴스턴 NRG 스타디움에서 열린다. 이번 슈퍼볼은 결승진출 단골팀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와 첫 우승을 노리는 애틀랜타 팰컨스의 맞대결로 관심을 끈다. 여기에다 트럼프 대통령 이슈까지 겹쳐지면서 어느 때보다 화제거리가 풍성한 결정전이 될 전망이다.

‘고기’ 먹어본 놈 VS 먹고 싶은 놈

아메리칸 풋볼 컨퍼런스(AFC) 챔피언 뉴잉글랜드 패트리어츠는 소위 ‘고기 맛을 아는 팀’이다. 역대 9번째 슈퍼볼 무대를 밟는 뉴잉글랜드는 NFL 사상 최다 진출 팀이 됐다. 우승도 4차례나 차지했다.

이와 달리 내셔널 풋볼 컨퍼런스(NFC) 챔피언인 애틀랜타는 1966년 창단 이후 첫 우승에 도전한다. 98년 정규시즌 15승 1패를 거둬 슈퍼볼까지 올랐지만 덴버 브롱코스에 패해 아쉽게 고개를 숙였다. 19년 만에 다시 우승기회를 잡은 애틀랜타는 고기 맛 한번 보려고 벼르는 중이다.

두 팀의 맞대결은 ‘창과 방패의 대결’로도 요약된다. 뉴잉글랜드는 올 정규시즌 리그 최소 실점(250점·평균 15.6점), 애틀랜타는 최다 득점(540점·평균 33.8점)을 올렸다. 통계로 보면 수비가 강한 팀이 우세했다. 역대 슈퍼볼에서 정규시즌 최다 득점·최소 실점 팀이 여섯 차례 맞대결을 펼쳤고, 이중 최소 실점 팀이 4차례 우승을 가져갔다.

현역 최고의 쿼터백인 톰 브래디(39·뉴잉글랜드)와 최우수선수(MVP) 유력 후보인 맷 라이언(31·애틀랜타)의 맞대결도 관심거리다. 브래디는 이번 슈퍼볼에서 NFL 역대 쿼터백 중 가장 많은 34번째 플레이오프 경기를 치르는 베테랑이다. 플레이오프에서 통산 24승 9패를 기록했고, 7번 슈퍼볼에 올라 4차례 우승을 경험하는 등 우승 노하우가 풍부하다.

라이언은 올 시즌 패싱 터치다운(2위), 패싱 야드(2위), 패스 성공률(3위), 패스당 전진 야드(1위) 등 커리어하이 활약을 바탕으로 생애 첫 우승에 도전한다. 라이언은 고교시절부터 유망주로 주목을 받으며 2008년 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애틀랜타 유니폼을 입었다.

트럼프 이슈로 물든 슈퍼볼?

하지만 올 슈퍼볼의 최고 주인공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될 것 같다. 이번 슈퍼볼에는 트럼프와 연관된 여러 이슈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스포츠광’인 트럼프 대통령은 뉴잉글랜드의 팬으로 알려져 있다. 취임 직후 지지율이 사상 최저일 정도로 외면받고 있는 트럼프인 터라 미국 내 NFL 팬들 다수는 애틀랜타의 우승을 기원한다.

최근 미국의 여론조사 기관 ‘PPP'가 미식축구 팬 37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애틀랜타를 응원하겠다는 대답이 53%로 뉴잉글랜드(27%)보다 두배 가량 많았다. 민주당 지지자(54%-27%), 무당파(47%-31%)들은 물론이고 공화당 지지자(58%-23%)까지 애틀랜타를 응원하고 있다.

더욱이 애틀랜타 팰컨스의 우승 야심은 트럼프 때문에 활활 타오르는 중이다. 지난달 중순 흑인 인권운동가 출신인 존 루이스(민주·조지아) 연방 하원의원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해킹 사건을 거론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난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스 의원은 선거결과에 대해 불평하기보다는 범죄가 만연하고, 끔찍하고, 무너져가는 지역구의 문제를 고치는데 더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맞받았다. 조지아주의 주도인 애틀랜타 시민들은 이 말에 경악했다. 애틀랜타 팰컨스가 우승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통상 최고 팝스타가 무대를 꾸미는데 올해는 유독 주목을 받고 있다. 바로 반(反)트럼프의 대표 연예인인 레이디 가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 당시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했고 선거 후에도 뉴욕 트럼프타워 앞에서 반트럼프 시위대에 동참한 바 있다. NFL 사무국은 가가가 하프타임 쇼 중 정치적 퍼포먼스를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슈퍼볼 광고도 트럼프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슈퍼볼 광고에서는 애국, 반이민 등 트럼프 코드와 연관된 내용이 다수 방영된다. 현대차는 해외 파병군인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한 광고를 준비했다. 애국심을 강조하는 트럼프 성향에 맞췄다는 평가다.

맥주회사 버드 와이저는 이민자의 아메리칸 드림을 주제로 한 광고를 제작했다. 공교롭게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을 제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과 맞물려 이슈가 됐다. 버드와이저 측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에 선을 그었다. 뉴욕 타임스는 2일 “슈퍼볼이 정치적인 이슈로 도배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