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8만여명의 정신질환 입원환자 중 오는 5월말 이후 절반 가량인 4만여명이 퇴원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제는 퇴원한 정신질환 환자의 진료와 치료를 담당할 지역사회 의료인프라나 공공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해 5월29일 공포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의 오는 5월30일 시행을 앞두고 의료계가 정신병원의 입퇴원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정신질환 환자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로 개정된 정신보건법에는 강화된 강제입원 조항이 포함됐는데, 관련 학회는 이 조항으로 인해 정신병원 입원환자 절반 가량이 병원 밖에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개정 정신보건법 무엇 담겼나=오는 5월30일 시행되는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은 지난해 5월19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 법안은 지난 19대 국회에서 발의된 정신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이명수 의원, 최동익 의원 각각 대표발의)과 정신장애인 복지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김춘진 의원 대표발의), 정부가 제출한 정신보건법 전부개정법률안 등 4개 법안을 병합해 통과됐다. 지난해 5월29일 공포된 후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오는 5월30일 시행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국민들의 정신건강증진 도모와 정신질환자에 대한 초기집중치료를 통한 만성화 방지,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와 복지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이에 따라 법 명칭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변경됐다.
해당 법안의 핵심은 정신질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강제입원제도 절차 요건 강화와 입원적합성에 대한 외부 심사체계 도입 등이다. 우선 정신질환자의 입원요건과 관련 기존 법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어 입원 필요성이 있는 경우’ 또는 ‘자신의 건강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경우(자·타해 위험)’ 중 1가지만 충족하면 입원요건에 해당됐다. 반면 개정법에서는 2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입원이 가능하다. 또한 기존 법에서는 법적보호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결정으로 입원이 가능했지만, 개정될 법에서는 정신과 전문의 2명의 소견이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법안에서는 서로 다른 정신병원에 소속된 정신과 전문의 2명 이상의 일치된 소견이 필요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최초 입원 후 치료입원 기간이 기존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시켰고, 정신질환자의 입원필요성을 판단하기 위해 2주의 진단입원 기간을 두도록 했다. 또한 입원단계 권리구제 절차 강화차원에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최초 입원 후 1개월 이내에 입원 적합성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정신질환 환자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해 의료진이 72시간 범위에서 퇴원을 거부할 수 있는 동의입원 제도를 신설했다.
◇의학계 “정신질환 입원환자 50% 병원 밖으로 내몰릴 우려”=이번 개정법에 대해 관련 의학계는 강제입원과 관련해 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를 해소시키기 위한 것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법 개정과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차기 이사장이자 학회 ‘정신보건법 대책 태스크포스팀(TFT)’ 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준수 교수(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는 “당장 개정된 법 기준에 따르면 현재 8만여명으로 추산되는 정신질환 입원환자의 절반 가량인 4만여명이 5월30일 이후 퇴원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권 교수는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이 대거 병원 밖으로 나오게 되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의료인프라가 부족한 점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권 교수는 “지역사회 의료인프라나 공공의료인프라가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정신질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이처럼 관련 의학계가 법 시행 후 정신병원 입퇴원 대란이 올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은 강화된 강제입원 조항 때문이다. 입원요건 2가지 모두 충족과 새로 도입되는 2인의 정신과 전문의 소견 등이 의료현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2인의 정신과 전문의 소견이 필요하다고 규정된 취지는 강제입원 차단과 환자 인권침해 해소 때문이었다. 또한 정신질환자가 입원하는 병원 소속 1인의 정신과 전문의는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어, 당초 국공립기관 정신과 전문의가 추가로 입원 관련 소견을 내도록 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신경정신의학회 측 입장이다.
권준수 교수는 “정신과 전문의 1인에 의해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남용 우려가 있어 2인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공공의료기관 정신과 전문의가 한 번 더 판단하라는 것이 취지다. 하지만 국공립기관 정신과 전문의 인력 140여명은 이러한 역할을 하기에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면서 “특히 입원 여부를 판단하는 기간이 2주인데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 교수는 “이러한 이유로 보건복지부는 민간의료기관 정신과 전문의를 추가했다. 공공의료기관의 정신과 전문의 인력이 부족해 민간의료기관 의사를 다시 모집해서 하겠다는 것인데, 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문제점을 짚었다. 특히 그는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담당 주치의다. 과연 2주 동안 공공의료기관 정신과 전문의가 얼마나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판단할지, 더군더나 민간의료기관 정신과 전문의가 단기간 내에 입원여부를 판단하는 소견을 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입원 필요성이 있는 경우’와 ‘자·타해 위험이 있는 경우’ 2가지 모두를 충족해야 하는 입원요건도 문제라는 것이 학회 측의 견해다. 권 교수는 “WHO나 UN 등에서도 입원 필요성을 판단함에 있어 자의적 판단을 배제하도록 하고 있고, 환자의 인권침해 우려로 매우 조심스럽게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가지 모두 충족이 아니라 두가지 중 하나만 충족해도 입원을 해야하는 것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강화된 입원요건으로 인해 환자의 조기치료와 사회적 문제도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권 교수는 “개정된 법에 의해 환자가 제때 입원치료를 받지 못해 본인과 가족 등 타인에게 위험이 가해지는 상황까지 기다리는 것은 정신질환자의 조기 진단과 치료와도 맞지 않다”며 관련 법을 개정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측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신병원의 입퇴원 대란을 막기 위해 입원요건과 정신질환 전문의 2인 소견 등 2가지 문제조항에 대한 수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권준수 교수는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법안이 수정 없이 시행되면 정신과 전문의들은 법범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정부가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현실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현장 목소리, 의학계 입장 충분히 수렴해 반영하고 있다”=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법령 공포 이후 관련 학회 의견수렴과 각 지방자치단체 설명회 실시, 하위법령TF 운영 등을 통해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부터 관련 학회와 개정 법안에 대한 하위법령TF를 구성해 의료현장의 의견을 수렴했고, 이를 토대로 하위법령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신보건법 대책 TFT가 제기한 문제들은 정신질환자의 인권강화 측면에서 법의 취지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차전경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은 “입원환자 절반이 무조건 퇴원하게 된다는 예측은 근거가 없다”면서 “입원요건 2가지 충족과 관련 WHO가 상황에 맞게 판단하라는 의미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2가지 모두를 요건으로 삼고 있고, 세계적인 추세라”고 반박했다. 이어 차 과장은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관리(케어)가 가능한데도 무조건 입원을 시키면 안된다는 것이 취지다. 이 요건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가 치료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2명의 정신과 전문의 소견 제출에 대해서도 “국내 국공립의료기관은 약 3% 정도다. 시스템 자체가 민간의료 중심이어서 국공립의료기관 또는 지정의료기관으로 규정을 두고 정신질환자의 인권보호를 강화하라고 한 것이 법의 취지”라고 강조했다.
또한 차 과장은 “관련 학회 등과도 꾸준히 의견을 나눴고, 설명회 등을 통해 현장의 목소리도 듣고 있다. 지난해 설명회를 통해 11개 지자체들이 지역 상황에 맞게 지정의료기관을 선정해 시행하겠다는 계획을 복지부에 제출했다”며 “판정을 담당할 의료진의 비용과 관련 보험수가를 설계 중이며, 법적 책임 부분도 정리 중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행정적인 절차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병기 기자
5월말 정신병원 입퇴원대란 오나… 8만여명 입원환자 중 4만명 퇴원 할 수도 있어
입력 2017-02-05 20:26 수정 2017-02-06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