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실을 찾은 여성 J가 말했다. “저희 남편은 밖에서만 젠틀맨이지 집에서는 나쁜 남자예요.” 비단 J의 남편만 그럴까? 기혼 여성을 상담하다 보면 똑같은 이야기를 정말 자주 듣는다. 밖에서만 좋은 남자, 집에서는 나쁜 남자는 명절이 다가오면 부쩍 늘어나고 명절 연휴가 끝나도 좀체 줄지 않는다.
요즘은 남성들도 “명절이 힘들다”고 한다. 운전해서 고향에 내려가면 피곤하다. 어른들께 인사하고 오랫동안 못 봤던 지인을 만나는 것도 부담스럽다. 하루 이틀 고향에 머물다 집에 돌아오면 명절 연휴가 예비군 훈련 같다고 호소하는 남성도 없지 않다.
상담했던 40대 남성은 명절 때마다 아내가 “친구는 명절 연휴가 되면 해외여행 가는데 나는 시댁 가서 전이나 부치고, 설거지하고…”라고 불평하지만 묵묵히 들으며 최대한 아내의 비위를 맞춘다고 했다. 평소에는 밤늦게 퇴근해서 집에서 잠만 자고, 집안일은커녕 아이들과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주말이면 피곤하다고 소파에 누워있었는데 명절날 “결혼한 여자가 차례 준비하는 건 당연하잖아. 다른 여자들도 다 하는 건데 이렇게 생색낼 필요 없잖아!”라고 감히 말했다가는 이기지도 못할 부부 싸움만 하게 된다면서.
팍팍한 현실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 중에 퇴근 후에도 힘이 넘쳐나 가족과 열정적으로 시간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칼퇴근해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듣기 좋은 구호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직장인은 또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인정받으려고 집 밖에서 힘을 다 써버려서 가족에게 멋진 남자의 모습을 보여줄 시간과 에너지는 제대로 남겨 둘 수도 없는데…. 이렇게 살다 보면 밖에서만 젠틀맨, 집에서는 나쁜 남자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회사가 남성들을(물론 여성들도) 좀 더 놓아주었으면 좋겠다.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끝까지 버텨내려는 소심한 남자가 집으로 돌아오면 나쁜 남자가 되고 마는 멍에에서 벗어나려면 ‘가족이 먼저’라고 회사가 먼저 나서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밖에서만 젠틀맨, 집에서는 나쁜 남자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직장인이 슈퍼맨도 아니고, 몸이 두 개도 아니고,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김병수(서울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교수)
[감성노트] 나쁜 남자
입력 2017-02-03 18: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