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반기문 ‘양반 스타일’ 득보다 실

입력 2017-02-02 17:43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갑작스러운 대선 불출마 선언에 대한 정치권의 평가는 양극단이다. “고뇌에 찬 결단”부터 “무책임한 결정”까지 제각각이다. 긍정·부정을 떠나 우유부단할 줄 알았는데, 과단성에 놀랐다는 평가가 가장 많다. 한 바른정당 의원은 2일 “반 전 총장을 별명대로 기름장어로 알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정치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유독 ‘순수’를 강조했다. 불출마 선언에서는 “정치교체와 국가 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말했고, 캠프 참모들에게 전했던 고별사에서는 “너무 순수했던 거 같다”고 토로했다. 그의 순수에 대해 일부 정치인들은 “그게 바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지적했다. 또 “국제신사였지만 충청도 양반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다”는 말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의 20일간 대권 행보도 아마추어리즘과 양반 스타일이 버무려진 듯했다. 한 측근은 반 전 총장이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를 만난 뒤의 일화를 공개했다. 김 전 대표는 아무런 정치적 제안 없이 “그저 도와 달라”는 반 전 총장을 차갑게 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모들은 반 전 총장이 회동에서 김 전 대표에게 총리직이나 장관을 절반씩 나누는 ‘공동정부’를 제시하지 않은 데 대해 잔소리를 했다. 이에 반 전 총장은 “첫 만남에서 그런 얘기를 하면 상대방이 상놈으로 볼까봐 그런 말을 꺼내지 못했다”고 변명했다고 한다.

반 전 총장의 대선 불출마는 참모들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언뜻언뜻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냈다고 참모들은 전했다. 반 전 총장은 “내가 국민 통합을 위해 정치권에 발을 디뎠는데, 내 문제로 인해 국민들이 더 분열하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지지율이 떨어지자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비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범여권에서는 반 전 총장을 돕겠다고 공개적으로 나섰다가 지지율이 떨어지자 새누리당 탈당을 머뭇거린 충청권 의원들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만약 의원들이 돕겠다고 탈당했는데, 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어떡하나”라고 탈당을 오히려 만류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다른 측근은 “반 전 총장은 의원들이 혹시나 탈당해서 갈 곳이 없어지는 상황을 막기 위해 서둘러 불출마 선언을 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은 서울 마포구 캠프 사무실에서도 충청도 양반 스타일을 여실히 보여줬다. 반 전 총장은 참모들에게 “여러분이 나보고 그렇게 변하라고 했는데, 제가 변하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토로했다. 보다 정치적으로 행동하라는 참모들 조언마저 받아들이지 못했던 미안함을 전달한 것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의원은 “반 전 총장이 개헌을 통해 청와대와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공약을 준비했었다”면서 “그는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완성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