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세가 지난해 말부터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대규모 살처분에 따른 ‘악몽’이 올해 상반기까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날씨가 풀리면 매몰된 가금류에서 나온 침출수가 토양을 오염시키고, 악취가 퍼질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AI 바이러스가 아직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다시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하수 오염 2차 재앙 걱정
농림축산식품부는 2일 0시 현재까지 도살 처분된 가금류를 총 3281만 마리로 집계했다. 지난해 11월 16일 충북 음성과 전남 해남에서 AI가 처음 발생한 지 불과 3개월도 안돼 살처분 마릿수는 역대 최대치를 훌쩍 넘어섰다.
전국에 조성된 가금류 살처분 매몰지는 434곳에 달한다. 정부는 매몰지 침출수 등 2차 피해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지난달 16∼20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점검에 나섰다. 매몰지 중 환경오염 우려가 높은 일반매몰 방식 등으로 가금류가 살처분된 169곳을 점검한 결과 28.4% 수준인 48곳에서 62개의 관리미흡 사항이 적발됐다.
일반매몰은 구덩이를 파 바닥에 비닐을 깔고 동물을 묻은 뒤 그 위에 흙을 덮는 방식이다. 2011년 구제역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이 일반매몰 방식으로 살처분됐다. 일반매몰이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지적이 나오자 최근 동물을 밀폐형 섬유강화 플라스틱(FRP) 저장조에 담아 매몰하는 새로운 방식이 도입됐다. 이번 AI와 관련해선 전국 매몰지의 절반 정도인 200여곳이 새 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밀폐형 저장조에 담아 사체를 처리할 경우 저장조가 파손되지 않는 이상 침출수로 인한 토양·지하수 오염 우려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나머지 매몰지 중 100여곳은 사체를 미생물 처리된 왕겨에 묻는 호기호열 방식으로 매몰했고, 100여곳은 과거처럼 일반매몰 방식으로 사체를 처리했다.
호기호열 방식으로 오리 1만3500마리를 매몰한 전남 해남에서는 주민들이 동물 사체 썩는 냄새가 진동해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정부는 매몰지 이설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향후 이 같은 민원이 줄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방역 과정에서 유독성 소독제가 사용됐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79개 거점소독시설에서 쓰인 소독제가 유독성물질 또는 특정수질유해물질을 포함하고 있다. 또 180개 거점소독시설에서는 겨울철에 효과가 떨어지는 소독제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부는 아직까지 매몰지 지하수 수질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오염 우려 매몰지 가운데 지하수 관정이 만들어진 191곳을 조사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현재 매몰지 106곳의 203개 관정을 조사 완료했고 49개 관정에서 수질 기준을 초과한 것으로 파악했다. 다만 매몰지가 만들어지지 않은 축산지역 지하수에서 보이는 오염도 범위 내였다. 침출수를 오염원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AI 종식까지는 첩첩산중
지표상으로는 AI 종식이 가까워진 듯하지만 방역 당국은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에는 광주의 한 도로에서 폐사한 비둘기 7마리가 한꺼번에 발견돼 국립환경과학원이 고병원성 AI 감염 여부를 분석 중이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현재까지 비둘기는 AI에 잘 감염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광주의 비둘기가 AI에 감염돼 폐사한 것이라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가 된다”고 말했다. 비둘기는 주요 도심을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조류다.
민족대이동이 이뤄졌던 설 연휴가 이제 막 끝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음 주까지는 AI 재확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AI 잠복기는 최장 10일 정도다.
2∼3월 날씨가 따뜻해지면 겨울 철새가 북상하면서 AI 바이러스를 다시 퍼뜨릴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의심신고가 21일간 접수되지 않았을 때 AI가 종결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현재도 산발적으로 의심신고가 접수되고 있기 때문에 최소 2월 말까지는 AI 종식을 기대하기 힘들다”고 했다.
세종=유성열 이도경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Wide&deep] AI 한풀 꺾였지만 이번엔 살처분 침출수 ‘악몽’
입력 2017-02-03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