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환율조작국 지정땐 한국도 포함 가능성 커”

입력 2017-02-01 23:59
일본 도쿄의 외환 딜러가 주시하는 모니터 화면에 1일 장중 엔·달러 환율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가 나란히 잡혀 있다. 전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환율조작국으로 지목한 영향으로 장 초반 엔화 가치가 달러당 112엔대 초반까지 상승(환율 하락)하는 등 외환시장이 출렁거렸다. AP뉴시스
한국이 미국과 중국 등 경제 대국의 ‘환율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일본 독일을 지목하며 환율을 조작한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와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에 ‘주홍글씨’를 새기면 우리도 함께 휩쓸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일각에선 북핵 등 안보문제를 변수로 제시한다. 지난해 말까지 치솟던 원·달러 환율은 트럼프가 취임한 지난달부터 꾸준히 하락세였다. 이번 발언 직후인 1일 원·달러 환율은 12.1원 떨어진 1150.0원에 개장, 4.0원 하락한 1158.1원으로 장을 마쳤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일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 자체가 자의적이라 무역적자가 심하면 거기 맞춰서 바꾸는 측면이 있다. 중국이 지정된다면 우리 역시 포함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미국이 중국에 ‘환율조작국’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려면 지정 요건을 바꿔야 한다. 요건을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한국이 환율조작국에 포함될지도 결정된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해 4월과 10월 잇따라 한국을 중국 일본 독일 대만 등과 함께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한국은 미국의 환율조작국 요건 3가지 가운데 2가지에 해당된다. 연간 대미 무역수지의 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도 3%를 초과했다. 우리 정부가 GDP 대비 2%를 초과해 달러 순매수에 개입했다면 요건 3가지를 모두 채울 뻔했다.

미국과 중국 사이 환율전쟁의 여파로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중국과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간접피해를 입는다. 이시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원화와 위안화의 가치가 달러화 대비 각각 10% 절상되고 중국 성장률이 1% 포인트 낮아지면 우리 경제성장률은 0.4∼0.6% 포인트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도 있다. ‘안보’가 환율조작국 요건 변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이 담긴 무역촉진법의 ‘예외조항’을 발동할 가능성 때문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환율조작국 지정 리스크가 커지긴 했지만, 무역촉진법에는 예외조항으로 ‘미국의 경제안보 이익을 훼손한다고 판단될 경우 제재 시행을 보류할 수 있다’는 문구가 있다”면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더라도 이를 발동해 제재 자체를 보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트럼프는 취임 뒤 무역이나 환율 등 경제 이슈 대신 안보를 내세우며 한·미동맹 강화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정 팀장은 “최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서 안보 이슈가 부각된 점,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방한할 예정인 점, 최근 한·미 관계에서 환율 이슈가 제기되지 않은 점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진단했다.

일부에선 미국이 1985년 주요 4개국(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을 상대로 맺은 ‘플라자합의’처럼 트럼프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정하는 시나리오도 제기한다. 이 경우 미국과 무역규모나 무역흑자가 비교적 적은 한국은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이 장기 불황에 빠진 전례가 있어 중국 등이 인위적 환율 조정을 용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환율전쟁이 더욱 격화할 수 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