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어느 쪽도 아닌 ‘반반 행보’에 발목

입력 2017-02-01 21:31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귀국 이후 20일간 숨가쁜 일정들을 소화했다. 영남·호남·충청을 오가는 강행군이었지만 국민 대통합 메시지보다는 구설에 오르내린 장면이 더욱 부각됐다. 막판 반전 카드로 개헌론을 띄웠지만 정치권의 호응을 끌어내지는 못했다. 정치권에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려는 취지에서 ‘진보적 보수’ 같은 모호한 화법을 구사한 것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반반 행보’라는 비판도 들어야 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2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직후 ‘정치교체’를 귀국 메시지로 던졌다. ‘반사모’ 등 수백명이 몰려들어 대선 출정식을 방불케 했지만 관심은 다른 것에 집중됐다. 공항 승차권 발매기에 1만원짜리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넣거나 프랑스에서 수입된 생수를 구입하려 했던 모습 등이 공격 대상이 됐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고향인 충북 음성 선친 묘소에 참배했을 때 퇴주잔 술을 받아 마셨다는 ‘가짜 뉴스’에 시달리기도 했다. 음성 꽃동네에선 누워 있는 할머니에게 턱받이를 한 채 죽을 떠먹이는 장면이 부적절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반 전 총장의 영·호남 행보도 순조롭지 않았다. 전남 진도 팽목항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선 반 전 총장을 비난하는 시위대와 맞닥뜨렸다. 반 전 총장은 지난달 18일 대구 청년들과 고깃집에서 대화를 나누는 행사 중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질문을 반복했던 취재진에게 “나쁜 놈들”이라고 발언, 나중에 사과해야 했다.

광폭 행보를 계속했으나 지지율은 하락했다. 반 전 총장 측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반 전 총장의 일기장까지 공개하며 적극 해명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 검찰은 뇌물공여 등 혐의를 받고 있는 반 전 총장의 동생 반기상씨에 대한 체포를 우리 정부에 요청했다. 지지율 반등은 쉽지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이른바 제3지대 빅텐트론 구축을 위해 설 연휴 전부터 정의화 전 국회의장,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을 잇달아 만났다. 대부분 회동 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 승부수는 ‘반문(반문재인) 연대’의 핵심 고리인 개헌 카드였다. 지난 25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분권형 개헌 추진 선언에 이어 지난 31일 대선 전 개헌 추진 및 대통령 임기단축 수용 의사까지 내비쳤다. 그러나 정치권의 냉담했던 반응은 반 전 총장을 불출마로 이끌었다. 새누리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각 당 지도부와 회동한 직후였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