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불출마]“너무 순수했던 거 같다… 정치인 솔직한 사람 없더라”

입력 2017-02-01 21:31 수정 2017-02-01 23:52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1일 대선 불출마 폭탄선언을 한 이후 서울 마포구의 캠프 사무실로 이동했다. 반 전 총장은 2시간 정도 머물며 20여명의 마포팀 참모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반 전 총장의 고별사에는 참모와 시민들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배어 있었다. 동시에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도 응축돼 있었다. 일부 참모들은 반 전 총장의 고백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참모들을 향해 “허탈하게 만들고 실망시켜 너무 미안한 마음”이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오늘 새벽 일어나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불출마) 발표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결정을 하면서 여러분과 미리 상의하지 못해 미안하다. 아마 한 사람이라도 상의를 했다면 뜯어말렸을 것이 분명했다”고 덧붙였다. 반 전 총장은 “한 발 더 디디면 헤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토로했다.

반 전 총장은 국민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제일 미안한 생각이 드는 게 여러분(참모들)과 거리에서 만난 많은 분들”이라며 “(국민들의) 따뜻한 손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좌절하면서도 그분들 때문에 버틴 것”이라며 “이분들에게 무슨 힘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정치권에 대해선 강한 불신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반 전 총장은 “순수하고 소박한 뜻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너무 순수했던 것 같다”면서 “정치인들은 단 한 사람도 마음을 비우고 솔직하게 얘기하는 사람이 없더라”고 비판했다. 또 “(정치인들이) ‘정치는 꾼에게 맡기라’고도 하더라. ‘당신은 꾼이 아닌데 (정치판에) 왜 왔느냐’고 하더라”면서 “‘정치가 정말 이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특히 정치권에 대해선 반감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정치인들 눈에서 사람을 미워하는 게 보이고 자꾸만 사람을 가르려고 하더라”고 했다. 이어 “표를 얻으려면 ‘나는 보수 쪽’이라고 확실하게 말하라는 요청을 너무나 많이 들었다”며 “말하자면 ‘보수의 소모품’이 되라는 것과 같은 얘기”라고 지적했다. 또 “‘정치인이면 진영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하더라. 그러나 보수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면서 “나는 보수지만 그런 얘기는 양심상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반 전 총장은 고별인사를 마친 뒤 캠프 인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고마움을 전했다. 귀가 직전 반 전 총장은 자택 앞에서 “(불출마를) 재고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제가 할 수 없으면 다른 분에게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니냐. 제가 잡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자리에선 “완전히 인격을 말살하고…”라며 격정적인 표현도 거듭 사용했다.

불출마 선언 직전 면담했던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반 전 총장에게 “‘꽃가마 대령하겠다’는 사람 절대 믿지 마시라”며 “총장님을 위한 꽃방석은 마련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반 전 총장은 “요즘 절감하고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