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습지의 날(2일)을 이틀 앞둔 31일 서울 강서구 강서생태습지공원은 적막했다.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방지를 위하여 출입을 금합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이 공원 입구를 막고 있었다. 다른 입구에도 마치 범죄현장처럼 접근금지 테이프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다. 테이프에는 빨간 글씨로 ‘위험’과 ‘안전제일’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날 오후 4시쯤 산책을 나온 서모(37·여)씨는 공원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현수막을 보고선 발걸음을 돌렸다. 서씨는 “호기심에 근처까지 와 봤는데 길이 막혀 있을 줄은 몰랐다”며 당황스러워했다. 강서구 주민 이모(50)씨는 “출입금지 표시가 붙은 공원 주변을 지나칠 때마다 꺼림칙하다”며 “요샌 이곳을 찾는 사람도 줄어 분위기가 더 스산하다”고 말했다.
생태계의 보고가 돼야 할 습지공원이 AI 확산으로 금지구역으로 변했다. 마포구 난지한강공원 생태습지원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곳에도 강서습지공원과 같은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서울시는 “철새 도래지인 습지를 통해 AI가 확산될 수 있다”며 시내 생태공원 4곳을 지난해 11월 말부터 폐쇄했다.
2일은 세계 습지의 날이다. 1971년 2월 2일 습지보호를 위한 람사르협약이 맺어진 날을 기려 만든 국제적인 기념일이다. 한국은 1997년 7월 28일 101번째로 람사르협약 회원국이 됐다. 협약은 철새의 중계지나 번식지가 되는 습지를 보호하고 습지의 가치를 대중에게 알리도록 회원국에 책임을 지운다.
서울시는 강서습지공원이 폐쇄되기 이틀 전인 지난해 11월 22일 창녕군과 우호교류협약을 체결해 200㎡ 크기의 천변습지를 조성했다. 창포·물억새 등을 심어 창녕 우포늪의 생태계를 옮겨왔다. 습지를 ‘느림과 여유의 자연의 쉼터’로 만들겠다는 취지였다. 서울시는 이 사업을 “시민들이 멀리가지 않고도 도심 속 한강공원에서 자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AI가 확산되면서 습지는 공포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철새들이 AI를 옮기는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습지공원은 사람이 접근하지 말아야 할 곳이 됐다. 서울시 한강사업본부 관계자는 “폐쇄 전까진 강서습지공원을 찾는 시민은 평일 10여명, 주말 30명 정도 됐지만 지금은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강서습지공원에 AI 바이러스가 나타난 건 아니지만 AI가 심각 단계에 이르러 예방 차원에서 습지공원을 폐쇄했다”고 설명했다.
습지공원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도 달라졌다. 강서구 주민 이장현(45)씨는 “AI가 유행한 뒤로 습지공원이 황량해졌다”며 “여름철에도 모기만 몰리는 것 같다. 습지라서 특별히 좋은 점을 못 느끼겠다”고 불평했다.
이제 시작단계인 습지 조성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성환 생태보전시민모임 대표는 “서울시의 노력으로 한강변에 습지가 늘어난 건 사실이지만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다”며 “대부분 시민은 습지를 우포늪과 같이 시간을 내서 멀리 가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는데 생활 가까이에서도 찾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
[르포] AI로 두달째 폐쇄… 시민 발길마저 끊겨 ‘을씨년’
입력 2017-02-02 05: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