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눈의 황홀] 종이꽃 장인 3代, 아름다움에 집착

입력 2017-02-02 17:34

명지현(51)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눈의 황홀’(문학과지성사)이 나왔다. 그에게 붙은 ‘독한 이야기’ ‘맵고 중독적인 서사의 맛’ 같은 수식어가 여전히 제 빛을 발하는 책이다. 특히 표제작인 ‘눈의 황홀’은 명지현표 단편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어머니. 가품을 진품으로 만들려면 제 목숨을 바쳐야 하지요? 꽃을 만드는 이들이 자결했던 이유는 하나, 범부가 볼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함이지요. 우리는 제 몸을 던지고서야 왕가의 꽃을 생물로 살려내고 대대손손 영화를 보장받았습니다.”

‘눈의 황홀’은 할머니·어머니·손녀로 이어지는 화장(化匠·종이꽃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장인) 삼대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재현하기 위해 매진하다 못해 ‘저승에나 가야 본다는 천상의 꽃’을 보려고 자기 목을, 심지어 딸·손녀의 목까지 조르는 괴기한 집착을 다룬다. 지옥에 살더라도 끝내 이루고 말 어떤 경지를 향하고자 하는 예술가·장인의 광기는 그가 천착해온 소재다. 눈 속에 벌레를 키우다 시각마저 포기해버린 도예가(‘충천’), 매운 음식에 조금씩 독가루를 넣어 사람을 홀리는 치명적인 맛을 내는 주인공 덕은(‘교군의 맛’) 등이 나오는 전작이 그러하다.

서사의 또 다른 축은 최소한의 존엄마저 빼앗긴 존재들을 이야기 주체로 등장시킨다는 점이다. 이번 소설집에서는 유기된 아이(‘실꾸리’), 비혼모(‘구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차별받는 사람들 뿐 아니라 흙과 실리콘 뼈로 만들어진 인간(‘흙, 일곱 마리’)이나 로봇(‘단어의 삶’)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작가적 상상력의 일단을 보여준다. ‘단어의 삶’에서는 학교 재단 이사장 후계자의 박사 논문 대필을 위해 ‘김유정 로봇’을 사들였다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반품시키는 교장이 등장한다. 실은 김유정 로봇이 ‘그(김유정)를 존엄하게 보존하고자’ 스스로 고철이 되길 시도한 것이다.

이런 소설의 소재와 주제는 작가가 사회문제에도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과 연결된다. 그는 2009년 ‘작가선언 69’에 동참해 용산참사 현장에서 1인 시위를 벌였고, 2014년 광화문광장에서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릴레이 단식에도 참여하기도 했다. 광고회사 카피라이터, 방송사 다큐작가로 활동했던 그는 200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이로니, 이디시’와 장편 ‘정크노트’ ‘교군의 맛’ 등이 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