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1일 대선 불출마 선언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반 전 총장은 새누리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을 방문하는 공개 행보를 이어가던 중 돌연 국회를 찾아 “정치교체를 이루려던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 이어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면서 쏟아지는 질문에 “저 혼자 결정한 일”이라고만 하고 입을 닫았다. 반 전 총장은 불출마 선언 후 서울 마포 사무실을 찾아 참모들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반 전 총장 참모들도 대부분 불출마 선언을 알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이 대선 뜻을 접은 것은 일단 지지율 하락세가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지난 12일 귀국 이후 곧바로 전국을 돌며 민생 행보에 나섰다. 그러나 기대했던 ‘컨벤션효과’는커녕 오히려 가는 곳마다 논란과 설화를 빚었다. 한때 30%에 육박했던 지지율은 최근 10%대 초반까지 떨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의 양자 대결에선 지지율 격차가 배 이상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바른정당 정병국 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왜 강점을 살리지 못하느냐는 지적에 “여론이 자꾸만 나빠진다”고 어려움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이 개헌과 연정, 반문(반문재인) 연대를 내걸고 치려던 ‘빅텐트’도 힘을 받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은 김무성 김종인 박지원 손학규 정의화 등 여야 유력 정치인들과 연쇄 회동했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물은 내놓지 못했다. 반 전 총장이 전날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개헌추진협의회 구성을 제안한 것도 지지율 하락세를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 성격이 컸다. 반 전 총장에게 공개 러브콜을 보냈던 바른정당과 국민의당도 뻣뻣한 태도로 돌아섰다.
그러자 반 전 총장을 돕겠다던 현역 국회의원들이 관망세에 들어갔다.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 8명은 전날 국회에서 만나 반 전 총장 지지 의사를 재확인하면서도 탈당 시점은 밝히지 않았다. 새누리당에 남아 반 전 총장을 외곽 지원하거나 추이를 관망하겠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반 전 총장의 ‘선(先) 독자세력화, 후(後) 빅텐트’ 구상마저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서 반 전 총장이 다급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도 극에 달한 것으로 보인다. 반 전 총장은 기자회견에서 ‘인격살해’란 표현을 썼다. 그는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되면서 저 개인과 가족,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겼다”고 했다. 또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는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렀다”고 성토했다. 반 전 총장은 민생 행보 와중에도 ‘페이크 뉴스(가짜 뉴스)’에 대한 불만을 여러 번 표출했었다. 여권 관계자는 “이대로 가다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이룬 업적과 명예마저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 가족의 반대도 불출마 결심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 사진=최종학 선임기자
뚝뚝 떨어지는 지지율에… 결국 ‘무릎’
입력 2017-02-01 1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