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측, 이번엔 ‘崔-高 치정사건’으로 몰아 판 흔들기

입력 2017-02-02 00:09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임된 이정미 재판관(왼쪽)이 1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10차 변론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재판관은 이날 “심판과정의 공정성, 엄격성이 담보돼야 심판 정당성이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박근혜 대통령 측이 탄핵심판 선고를 3월 13일 전에 하겠다는 헌법재판소의 방침을 재차 비판하며 강한 압박에 나섰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은 “탄핵심판이 전 세계 사법 역사상 비웃음을 살 재판으로 남을까 두렵다”고도 했다. 탄핵 청구인인 국회탄핵소추위원회 측은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든 말든 박 대통령이 자기 살 길만 찾으려는 것”이라며 날선 비판을 가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는 1일 탄핵심판 10차 변론에서 “진정한 진검승부를 원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날 변론은 박한철 전 헌재소장 퇴임 후 재판관 8명 체제로 열린 첫 변론이었다.

이 변호사는 “헌재가 검찰 수사기록에 의존하며 피청구인의 신청 증인을 불채택할 경우 조서 재판이 될 우려가 있다”며 “청구인에게 예리한 일본도를 주고, 피청구인에게는 둔한 부엌칼을 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재는 지난 변론에서 박 대통령 측이 추가로 신청했던 증인 39명 중 10명만 채택했다. 대부분 증인들의 진술 조서 등이 제출돼 있기 때문에 신문이 불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박 대통령 측은 이에 반발해 증인 15명을 추가로 신청했다. 이미 헌재 증인신문을 받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도 포함됐다.

박 대통령 측은 또 이번 사태가 “최씨와 고영태 전 더블루케이 이사가 불륜관계에 빠지며 시작된 것”이라고 규정했다. 최씨와 박 대통령 관계를 아는 고 전 이사 등이 사익을 취하려다 실패하자 정치권과 언론에 사건을 악의적으로 왜곡해 퍼뜨렸다는 주장이다. 이는 박 대통령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다는 취지다.

탄핵소추위 측은 즉각 반박했다. 권성동 탄핵소추위원장은 “권한대행 체제가 2개월간 이어지며 심각한 국정공백 사태를 겪고 있다”며 “소추 이유가 없다면 헌재가 더욱 빨리 기각해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위원장은 박 대통령이 국가기관인 헌재를 경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탄핵심판을 늦추려는 건 국민들 눈에 탄핵 사유가 이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불필요한 증거조사로 재판이 늦춰져선 안 된다는 논리다.

법조계에서는 박 대통령이 무더기 증인 신청 및 최씨와 고 전 이사의 불륜 관계 주장을 통해 판 흔들기에 나섰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 측은 지난 23일 8차 변론에서는 고 전 이사의 증인신문을 고집하며 “구역질나는 직업을 가진 남자가 나타나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보수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렸다는 분석이다.

앞서 박 대통령 측은 박 전 소장이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는 3월 13일 전 반드시 선고가 돼야 한다”고 하자 대리인단 총사퇴까지 시사하며 헌재를 압박했다. 탄핵심판이 2월 말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기간 종료 이전 선고되면 박 대통령에 대한 강제수사가 진행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 측으로서는 특검팀 수사기간이 한 달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탄핵심판을 최대한 늦추는 게 유리하다. 수사기간 연장 권한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갖고 있다.

이정미 재판관은 이날 재판관 회의를 통해 헌재소장 권한대행으로 선출됐다. 이 권한대행은 “탄핵심판의 헌정사적 중대성은 모두가 인식하고 있다”며 “심판 과정의 절차적 공정성과 엄격성이 담보돼야 결론의 정당성도 확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