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반 전 총장은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제가 주도해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 대통합을 이루겠다는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밝혔다. 10년간의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고 지난 12일 인천공항을 통해 금의환향한 지 불과 20일 만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맞서 보수 진영을 대변할 유력한 주자였던 그가 불출마함에 따라 대선 구도도 요동치게 됐다.
반 전 총장이 이처럼 최단 기간에 불명예 퇴진하게 된 것은 본인의 구상이 전부 어그러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에 정치적 기반이 전혀 없고 외교관 공직 경험이 전부인 그는 출발부터 다른 사람의 등에 올라타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귀국 일성으로 ‘국민 대통합’과 ‘정치교체’를 내걸었지만 반 전 총장에게는 이를 추진할 동력도, 비전도 사실 없었던 셈이다. 창당과 독자세력화를 놓고 우왕좌왕했으며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겠다며 하루에 영호남을 가로지르는 광폭 행보를 벌였지만 돌아온 것은 “도대체 당신의 정체성이 뭐냐”는 물음이었다.
또 기자를 향해 욕설을 하는 등 크고 작은 논란에 시달렸다. 이러는 사이 20%를 넘나들던 지지율은 10대% 초반까지 급락했으며 급기야 보수 진영에서 그를 대체할 후보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런 절박한 위기 속에 그는 31일 ‘대선 전 개헌추진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마지막 승부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파가 거부했고 국민에게도 감동을 주지 못했다. ‘반(反)문재인’ 세력을 묶기 위한 정략적 냄새가 물씬 난 탓이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불출마 이유로 “일부 정치인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이들과 함께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기성 정치권으로부터 배척당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반기문의 좌절’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충격에 빠져 있는 국민들에게 또 상처를 줬다. 대선 주자 한 명이 갑작스럽게 사라진 것 이상이다. 가장 큰 책임은 반 전 총장에게 있다. 그는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도 않았고 검증도 초기 단계인데 지레 포기했다. 이 정도 각오도 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면 무책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순수하게 그를 믿고 지지한 수많은 이들이 겪게 될 좌절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반 전 총장은 우리나라의 소중한 자산이다. 정치를 통해 헌신하겠다는 꿈은 무산됐지만 외교·안보 분야에서 나라를 위해 기여할 여지는 많다. 누가 차기 대통령이 되더라도 그의 경험과 노하우를 활용하기를 바란다.
[사설] 귀국 20일 만에 대선 불출마 선언한 반기문
입력 2017-02-01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