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한 수… ‘대법원 균형추’ 보수로 기울어
입력 2017-02-01 18:18 수정 2017-02-01 21: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1일(현지시간)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49) 콜로라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를 공석인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했다. 고서치가 상원 인준을 얻어 종신직인 연방대법관에 취임하면 연방대법원의 이념성향 분포는 기존의 ‘보수 4명 대 진보 4명’에서 보수 우위로 기울게 된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TV로 생중계된 발표를 통해 “고서치 판사는 뛰어난 법적 능력과 훌륭한 정신, 엄청난 규율로 초당적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치켜세웠다.
고서치는 수락연설에서 “법률의 대가인 앤터닌 스캘리아 전 연방대법관을 계승하게 돼 영광”이라며 “미국의 법률과 헌법에 충성하겠다”고 말했다. 고서치는 지난해 2월 숨진 스캘리아의 자리를 메우게 된다.
트럼프는 관행과 달리 고서치 지명 사실을 황금시간대인 오후 8시 발표했다. 직전에 고서치와 토머스 하디먼(51) 펜실베이니아주 연방항소법원 판사로 압축한 최종 후보 2명을 백악관에서 면접을 본 뒤 TV 카메라 앞에 나타나는 등 마치 ‘리얼리티 쇼’를 연출하는 듯했다.
25년 만에 가장 젊은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고서치의 경력은 화려하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옥스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연방대법원에서 바이런 화이트 대법관과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의 판사서기를 지냈다. 헌법해석을 원전에 충실해야 한다는 정통주의자로 분류된다. 일반 사건에서는 고용주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고, 정치인에 기부하는 행위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
40대의 고서치가 가세하면 향후 수십 년간 미 최고법원의 주요 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트럼프의 무슬림 7개국 입국금지 행정명령에 대한 반발 소송이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아 그의 입장에 따라 반(反)이민 행정명령의 운명이 좌우될 수 있다.
그러나 고서치가 상원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민주당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 공화당이 상원 100석 중 52석을 차지해 단순 투표를 하면 인준이 무난하지만 민주당은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를 예고한 상태다.
민주당은 지난해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대법관 후보로 지명한 메릭 갈랜드 판사에 대해 공화당이 청문회조차 열지 않아 지명을 무산시킨 것을 같은 방식으로 되갚아주겠다며 벼르고 있다. 민주당 제프 머컬리 상원의원은 “연방대법관 자리를 도둑맞았다”며 “인준 저지에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화당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시키려면 60석을 확보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쉽지 않다. 결국 다른 사안으로 민주당과 절충할 수밖에 없다.
연방대법관 자리를 둘러싼 대립은 트럼프 임기 중 몇 차례 더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83) 대법관과 스티븐 브라이어(78) 대법관이 고령이어서 공석이 또 나올 수 있어서다. 트럼프가 대법관 지명권한을 갖고 있는 한 연방대법원의 보수 색채는 점점 더 짙어질 전망이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