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흙수저’들의 꿈같은 EPL 생활 ‘레스터시티 동화’ 1년 만에 끝나나

입력 2017-02-02 05:17
레스터시티의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감독(오른쪽)이 1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터프 무어에서 열린 번리와의 2016-2017 프리미어리그 23라운드 경기에서 실망한 기색으로 미드필더 다니엘 드링크워터(왼쪽) 곁을 지나가고 있다. AP뉴시스

2015-2016 시즌 ‘여우 군단’ 레스터시티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제이미 바디(30) 등 ‘축구 흙수저’들은 자기 능력을 극대화하며 세계최고 리그에서 성공신화를 썼다. 하지만 이들은 ‘기적은 한 번 일어날 수 있을지 몰라도 되풀이되진 않는다’는 냉혹한 현실을 마주했다. 지난 시즌 창단 132년 만에 첫 우승을 차지한 레스터시티는 이번 시즌 강등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렸다. 불과 1년 만에 레스터시티의 동화는 잔혹동화로 바뀌고 있다.

레스터시티는 1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터프 무어에서 열린 번리와의 2016-2017 EPL 23라운드 경기에서 0대 1로 패했다. 6승3무14패(승점 21)를 기록한 레스터시티는 16위로 추락했다. 강등권인 18위 크리스털 팰리스(승점 19)와의 승점 차는 2점에 불과하다. 지난 시즌이 끝난 뒤 EPL 팀들에 전술을 분석당한 레스터시티는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레스터시티는 현재 공수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졌다.

무뎌진 공격력은 심각할 정도다. 특히 지난 시즌 영국축구기자협회 선정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공격수 바디는 상대 팀들로부터 집중 견제를 당하는 바람에 득점이 뚝 떨어졌다. 지난 시즌 EPL 역사상 최다인 11경기 연속 득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36경기에서 24골을 쓸어 담았지만 이번 시즌엔 19경기에서 5골에 그치고 있다. 지난 시즌 37경기에서 17골 10도움을 기록했던 리야드 마레즈(26)도 이번 시즌 20경기 3골 3도움으로 부진하다. 레스터시티는 최근 4경기에서 7골을 허용하는 동안 무득점에 그쳤다.

공수의 연결고리이자 수비진의 방호벽이었던 은골로 캉테(26)가 첼시로 이적한 것은 수비 조직력의 와해로 이어졌다. 레스터시티는 수비형 미드필더 윌프레드 은디디(21) 등을 영입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즌엔 68득점 36실점으로 막강했던 공수균형이 올 시즌은 1일 현재 24득점 38실점으로 180도 뒤바뀌었다.

결과가 좋지 못하자 자연스럽게 팀 분위기도 엉망이다. 현재 부상 중인 공격수 레오나르도 우요아(31)는 교체 출장이 잦아지자 SNS를 통해 라니에리 감독을 비난했다. 또 공개적으로 태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레스터시티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2016-2017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다. UCL에 처음 참가한 레스터시티는 고전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선전하고 있다. 예선 마지막 라운드에서 FC 포루투에 0대 5로 참패하긴 했지만 그전까지 4승1무를 기록해 조 1위로 16강에 진출했다. 레스터시티는 23일(현지시간) 세비야(스페인)와 16강 1차전을 치른다.

양 팀은 서로 다른 전술로 맞설 전망이다. 호르헤 삼파올리 감독이 이끄는 세비야는 패스 중심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라인을 올리고 전방을 압박한다. 반면 레스터시티는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집중하다 바디와 마레즈 등을 앞세워 역습을 시도하는 패턴을 애용한다. 세비야가 껄끄러운 팀이긴 하지만 레스터시티로서는 나름 괜찮은 16강 상대다. 세비야 홈에서 열리는 1차전을 잘 넘긴다면 구단 역사 최초로 UCL 8강에 오를 수도 있다. 레스터시티가 리그에서의 굴욕을 챔스리그에서 되갚을지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