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의료봉사단 단장인 박태용 원장은 신의주에서 한경직 목사 기념사업으로 어린이병원 사역을 펼치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수차례 북한 보건성에 신의주 소아병원 현대화를 요구했고, 2000년 11월 10일 신의주를 방문했다. 단둥에서 ‘조선’ 통행증을 붙인 지프가 철교를 건너는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신의주 보린원을 세워 어린이를 돌보던 한경직 목사의 뜻을 기리려는 영락교회의 50년 기도가 응답되는 시간이었다. 우리 일행은 평양에서 온 안내원 도움으로 압록강여관에 짐을 풀었다. 보건성 간부들도 내려왔다. 그런데 병원을 본 순간 열악한 시설에 경악했다. 어떻게 도와주길 원하는지 묻자, 건축자재를 지원해주면 모래와 자갈은 자체 조달해 개보수 공사를 하겠다며 의료장비 교체도 요청했다.
이후 영락교회는 6차례 개보수 공사를 마치고 의료설비도 현대식 장비로 교체했다. 한번은 평양에서 만난 보건성 장도경 부장이 “총장 선생, 얼마 전에 전국 소아과의사 대회가 있었는데 평안북도 소아병원 시설이 가장 우수한 것으로 평가됐습니다”라고 했다. 한편 영락교회 성도를 대표해 최창근·이창로 원로장로의 방북이 추진됐다. 신의주를 떠나온 지 50년만의 귀향이었다.
이후 영락교회는 신의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지만 2002년 5월 6번째 방북 후 출입이 중단됐다. 신의주특구 개발 계획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4년 4월 22일 신의주에서 불과 8㎞ 떨어진 용천역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다음 날 나는 오전 10시에 재단을 대표해 ‘제8회 정일형·이태영 자유민주상’을 수상하러 서울 중구청 강당으로 갔다. 수상 소감을 말하면서 “어제 평북 용천에서 폭발사고가 일어나 수많은 어린이가 희생당했습니다. 상금 전액은 용천 어린이를 돕는데 사용할 겁니다”라고 밝혔다. 수상식을 마치자 이부영 열린우리당 당의장이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말씀이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당에 긴급 간부회의를 지시해놓았으니 정부 차원에서도 도울 방법을 찾겠습니다.”
이 소식이 낮 12시 KBS 라디오뉴스에 보도되자 한나라당 사무총장 김형오 의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한나라당도 오후부터 당장 천막당사에서 모금을 시작할 것입니다. 성금은 한민족복지재단에 전달하겠습니다. 피해도 컸지만 국민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그런 가운데 불행 중 다행이라고 가슴 뿌듯한 소식이 들려왔다. 26일 SBS 저녁 8시뉴스는 “신의주의 한 병원은 용천 참사현장에서 후송된 부상자들로 넘쳐납니다. 한 남자 어린이는 이마부터 입까지 화상을 입은 채 간호사 품에 안겨 있습니다. 한 구호단체 요원은 폭발에 따른 충격으로 유리조각이 얼굴 살갗 깊숙이 파고들어 아이들이 심각한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후송된 부상자는 모두 370여명, 하지만 열악한 현지사정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사고 현장에서 기차로 2개 역 떨어진 곳에 소아병원이 있었다. 2년 전에 그 정도라도 시설을 고쳐놓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생전에 신의주 어린이들을 사랑한 한경직 목사와 그 뜻을 기린 영락교회의 봉사가 용천폭발사고 현장에서 수많은 생명을 구한 것이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형석 <12> 영락교회 北 위한 기도, 신의주 소아병원 현대화로 응답
입력 2017-02-02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