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오피스… 함께 쓰는 사무실 틈새 뚫고 테헤란로서 떴다

입력 2017-02-01 17:42
원하는 기간만큼 요금을 내고 사용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속속 문을 열고 있다. 인터넷과 프린터, 택배 서비스, 식음료를 다양하게 이용할 수 있는 토즈 비즈니스센터 강남점(왼쪽 사진)과 세무, 회계, 금융컨설팅까지 제공하는 현대카드 ‘스튜디오 블랙’ 모습. 각 업체 제공
1990년대 말 강남 테헤란로(路)는 ‘테헤란밸리’로 불렸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라는 뜻이다. 1994년 넥슨이 역삼동 오피스텔에서 문을 열었고 1995년 다음커뮤니케이션, 1997년 엔씨소프트, 1999년 네이버 등의 유수 IT기업이 강남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2000년대 말부터 벤처와 IT 기업이 테헤란로를 떠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분당으로, 다음은 서울 한남동으로 이전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도 판교 테크노밸리로 둥지를 옮겼다. 대기업도 마찬가지다.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한국타이어 등도 강남에서 판교로 이전했다. 비싼 임대료 때문이다. 이후 테헤란로 인근 오피스 공실률은 10% 가까이 치솟으며 그 명성에 빛이 바랬다.

그러나 최근 테헤란로는 스타트업의 명가로 다시 뜨고 있다. 그 중심에는 ‘공유 오피스’가 있다. 최근 2∼3년 사이 강남구 일대에만 120여 개가 넘는 공유 오피스가 문을 열며 창업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공유 오피스란 월 또는 년 단위로 공간을 임차해 사용하는 기존 사무실 임차와 달리 공간과 기간이 보다 세분화된 서비스를 뜻한다. 단순히 업무 공간 제공을 넘어 오피스를 같이 쓰는 타 업종과 협력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원하는 기간만큼 요금을 낸 뒤 공간을 사용할 수 있고, 복잡한 계약이 필요 없으며, 관리비 등 부대 비용 부담도 적어 스타트업에 최적화 된 서비스라는 분석이다.

국내 공유 오피스 시장은 위워크, 르호봇, 패스트파이브, 피투피시스템즈(토즈 비즈니스센터), 리저스코리아 등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가장 공격적으로 영역을 넓히는 업체는 르호봇으로, 전국 42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세계적인 공유 오피스 기업인 위워크도 약진하고 있다. 2010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돼 전세계적으로 8만여명의 멤버를 확보한 위워크는 10년, 20년 단위로 장기간 사무공간을 임대한 뒤, 공간을 잘게 나누어 월 단위의 공유 오피스 형태로 재임대하는 방식을 쓴다. 토즈 비즈니스 센터의 경우 이용 목적과 인원에 따라 최소 1인에서 최대 9인까지 이용할 수 있다. 사서함, 비서 서비스 등 포괄적인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강점이 있다.

현대카드도 지난달 서울 서초구 강남역 인근에 620여개 좌석으로 이뤄진 공유 오피스 ‘스튜디오 블랙(STUDIO BLACK)’을 오픈하며 경쟁에 가세했다. 세무, 회계, 금융컨설팅, 카셰어링 등 금융사의 정체성을 반영하는 한편 수면캡슐, 샤워실, 포토스튜디오 등을 배치해 다른 공유 오피스와 차별화한다는 방침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토즈 비즈니스센터 강남점의 월 이용료는 1인형의 경우 55만∼105만원 수준이다. 인터넷 사용료나 프린터, 택배 서비스, 회의실 뿐아니라 맥주, 음료, 다과 등 식음료 비용까지 합쳐진 금액이다. 패스트파이브의 경우에도 평균 월 50만∼55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오피스내 모든 시설과 장비, 사무용품을 사용할 수 있다. 보증금이나 추가 비용도 없다. 전기·수도세, 냉·난방비도 따로 안 낸다.

싼 가격과 다양한 서비스를 자랑하는 공유 오피스가 뜨면서 강남 테헤란로도 제 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강남구에 자리잡은 벤처기업만 2년 사이 178개사가 늘었다. 판교 테크노밸리 입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낮게 오른 테헤란로의 공유 오피스를 찾는 스타트업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민게임 ‘애니팡’을 만든 선데이토즈, 소셜커머스 기업 ‘티몬’ 등이 공유 오피스인 토즈 비즈니스센터를 이용하며 성공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성공을 꿈꾸는 기업들도 테헤란로로 속속 들어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유 오피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부동산 서비스라는 것이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경기 침체가 뚜렷해진 요즘 공실률을 낮춰준다는 측면에서 빌딩 공급자에게도 공유 오피스는 매우 유용하다”며 “정형화된 기존 임대시장에서 새로운 바람을 몰고올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공유 오피스도 임대업의 일종이어서 한계가 분명하다는 시각도 있다. 보다 발전된 서비스 개발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