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사태가 미국 행정부의 내부 충돌로 치닫고 있다. 정부 고위관리들은 트럼프의 명령을 거부하고 나섰고, 트럼프는 ‘해임’으로 맞서면서 정면충돌했다.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미국의 핵심 가치가 위태로워졌다”면서 퇴임 열흘 만에 현직 대통령을 비판했다.
트럼프는 30일(현지시간) 무슬림 7개국 국민 입국금지 명령에 반기를 든 샐리 예이츠 법무장관대행을 전격 경질했다. 그녀를 경질한 건 예이츠가 법무부 소속 검사들에게 무슬림 입국금지 행정명령을 방어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고 지시한 직후였다. 예이츠는 직원들에게 보낸 지시서에서 “이번 행정명령이 법적으로 옳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며 “내가 법무장관대행으로 있는 한 법무부는 행정명령에 대해 어떤 법적 옹호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악관은 즉각 예이츠에게 경질을 통보했다. 백악관은 보도자료를 내고 “예이츠가 미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합법적 명령 이행을 거부함으로써 법무부를 배신했다”고 주장했다. 또 “예이츠는 국경과 불법이민에 나약했던 오바마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이라고 비난했다. 예이츠는 오바마 행정부에서 법무차관을 지내다 새 행정부의 법무장관 후보인 제프 세션스가 상원 인준을 통과할 때까지만 장관대행을 맡기로 했다. 트럼프는 부랴부랴 데이나 보엔트 버지니아주 검사를 새로운 장관대행에 임명했고, 새 대행은 이날 오후 9시 취임했다.
CNN방송은 예이츠 경질을 두고, 과거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탄핵을 피하기 위해 법무장관을 해임한 사건인 ‘토요일 밤의 학살’에 빗대 ‘월요일 밤의 학살’이라고 비판했다.
반기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국무부 소속 외교관 100여명은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외교관들이 자국 행정부에 집단 반발한 것은 유례가 드문 일이다. 이들은 “무슬림 입국금지 명령은 미 본토에 대한 공격을 막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인들에 대한 악의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발은 주 정부로도 확산됐다. 공화당 소속인 찰리 베이커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트럼프의 행정명령에 반대한다”며 “주 검찰총장에게 연방법원에 제소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같은 당 소속인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트럼프의 행정명령은 미친 짓”이라고 성토했다. 캘리포니아주 의회는 행정명령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밥 퍼거슨 워싱턴주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을 열고 “행정명령은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며 “트럼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퍼거슨은 행정명령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종교와 신앙을 이유로 개인을 차별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트럼프의 조치를 비판했다. 미국에서 전임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거의 전례가 없다.
미국 내 최대 무슬림 단체인 ‘미국-이슬람 관계회의(CAIR)’도 이날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지방법원에 소송을 냈다.
하지만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행정명령을 1주일 전에 예고했더라면 ‘나쁜 놈들’이 벌써 미국에 몰려들었을 것”이라며 “많은 나쁜 놈들이 여전히 미국 바깥에 있다”고 말해 강경 입장을 고수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트럼프 열차’ 폭주… 반기 든 법무대행 해임
입력 2017-01-31 17:40 수정 2017-01-31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