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탄핵심판 빠른 결론 모든 국민이 공감”

입력 2017-01-31 18:01
꽃다발을 든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오른쪽 두 번째)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제5대 헌법재판소장 퇴임식을 마친 뒤 헌법재판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영희 기자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이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제5대 헌법재판소장 퇴임식에서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서영희 기자
박한철(64·사법연수원 13기) 제5대 헌법재판소장이 31일 서울 종로구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조속히 대통령 탄핵심판 결론을 내려야 한다는 점은 모든 국민이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남은 헌재 구성원들이 최종적인 헌법수호자 역할을 다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의 재판장이었지만 결정 선고를 내리지 못하고 떠나게 된 그는 “어려운 책무를 부득이 남기고 떠나게 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박 소장 퇴임으로 1일 제10차 변론기일부터는 임시 권한대행인 이정미(55·16기) 재판관이 재판장 역할을 맡는다. 헌재는 재판관석 오른쪽 끝을 비워둔 채 9인이 아닌 8인 재판관 체제로 심리를 계속한다.

박 소장은 “세계 정치와 경제 질서의 격변 속에서 대통령의 직무정지가 벌써 두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며 신속한 결론을 재차 강조했다. 박 소장은 지난 26일 변론기일에서 “늦어도 3월 13일까지는 이 사건의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에 이어 이 재판관까지 3월 13일 퇴임해 9인이 아닌 7인 체계로 심리를 계속하면 결과가 왜곡된다는 우려였다.

박 소장 퇴임 전까지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가 기각되려면 최소 4명의 재판관이 반대 의견을 펴야 했다. 앞으로 8인 체제에서는 3명만 반대해도 대통령직이 유지된다. 이 재판관까지 퇴임해 재판부가 7인으로 축소되면 기각에 필요한 반대표가 2명으로 줄어든다. 박 소장은 “헌재 바깥에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헌재가 슬기로운 해법을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지켜보겠다”며 “국민들께서도 헌재를 믿고 지켜봐 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검찰 출신으로서 처음 헌재를 이끌었다. 인사청문회에서 문제제기가 많았지만 “공안검사의 입장과 헌재소장의 입장은 명백히 다르다” “헌법재판은 민족공동체의 역사를 새로 쓰는 것”이라며 오히려 포부를 드러냈다. 헌재소장이 된 뒤에는 “늦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취임일성처럼 촌음을 아껴 일했다. 그는 무수한 기록을 읽느라 재임 중 안경을 세 차례 바꿔 썼고, 중요 사건을 맡을 때면 도시락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그가 이끈 헌재 제5기 재판부는 통상적인 위헌법률·헌법소원심판뿐 아니라 정당해산·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을 모두 경험했고 사회적으로 중대한 결정을 다수 내렸다. 통합진보당의 해산 결정과 간통죄 폐지, 성매매특별법과 김영란법의 합헌 결정 등이 대표적이다. 일몰 후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시법 조항의 한정 위헌 판단, 출퇴근 사고 산업재해 불인정 헌법불합치 판단 등도 의미 있는 결정으로 꼽힌다. 지난해 8월 아시아헌법재판소연합(AACC) 상설연구사무국을 서울에 유치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눈에 띄는 성과가 있다.

소장이 아닌 헌법재판관일 때에도 그는 소수자와 약자를 위한 의견을 다수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와 국내외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배상을 촉구하는 의견을 폈고, 세입자들의 주거이전비 보상조항이 주택재개발조합의 재산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교정시설에 수용된 사람이 서신을 보낼 때 봉하지 않은 상태로 교도소장에게 제출토록 하던 관행에 대해 “수용자의 통신 비밀을 침해한다”고 판단한 일도 유명하다. 이날 퇴임식에서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하창우 대한변협회장 등 많은 법조계 인사들은 박 소장이 기본권 보장의 폭을 넓혀 왔다고 평했다.

현직 재판관이 소장에 취임한 첫 사례였던 터라 그의 임기는 큰 논란이었다. 소장 취임 시점부터 새로이 6년을 보장한다는 견해가 대두돼 실제 입법까지 추진됐지만, 그는 헌재의 안정이 필요하다며 재판관 잔여임기를 따르겠노라 스스로 선언했다. 결국 박 대통령 탄핵심판 도중 물러난 그는 “후임자 임명절차가 진행되지 않아 탄핵심판이 소장 공석으로 진행되는 것은 유감스럽다” “정치권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박 소장 내외는 살던 집을 불교재단에 기부할 정도로 독실한 불교 신자다. 그는 “부와 명예, 공직에 내 것은 없다. 잠시 보관했다 때가 되면 다 돌려줘야 되는 것”이라고 국회에서 말한 바 있다. 이날 헌재를 떠나기 직전에도 “한바탕 행복한 꿈길에서 깨어나 돌아오니, 산새의 맑은 울음소리 봄비 끝에 들리네”라며 마지막 소회를 선시(禪詩) 한 수로 대신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