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31일 개헌추진협의체 구성을 제안하며 차기 대통령의 임기단축 방안을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귀국 후 지지율 하락세를 보인 반 전 총장의 반전카드다. 이른바 제3지대 빅텐트 구축에 난항을 겪자 ‘반(反)문재인 연대’의 핵심 고리인 개헌론에 더욱 불을 지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반 전 총장은 서울 마포구 한 빌딩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총선과 대선 시기가 맞지 않아 빚어진 많은 비효율을 해결하기 위해 2020년에 동시 출발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며 개헌을 거듭 강조했다. 대선·총선을 2020년 동시 실시하려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 유력 주자는 지금은 개혁할 때이지 개헌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개헌보다 중요한 개혁이 어디 있느냐”며 “이것(개헌)이 개혁의 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의 이날 개헌 관련 발언은 지난 25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의 분권형 개헌 추진 발언보다 수위가 높아졌다. 그는 ‘지지율이 낮다’는 질문에 “지지율이 부족한 것과 개헌추진협의체 제안은 별개의 사안”이라며 “앞으로 제가 하는 데 따라서 국민들의 신임, 지지 여부는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난항을 겪는 빅텐트 구축에도 자신감을 보였다. 반 전 총장은 야권 인사들과 개헌 논의가 잘 이뤄졌느냐는 질문에 “패권, 패거리 정치를 몰아내야 한다는 데 대해선 다 공감했다”고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가 반 전 총장과 함께하기 어렵다고 밝힌 것과 관련, “제가 만나고 있거나 제 캠프에 있는 분들을 보고 말씀하는 것”이라며 개헌 논의와는 별개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은 촛불민심에 대해 “광장의 민심으로 표현되는 국민들의 여망은 이제까지 잘못된 정치로 인해 쌓이고 쌓인 적폐를 확 바꾸라는 뜻”이라고 했다. 다만 “광장의 민심이 초기 순수한 뜻에서 변질된 면도 없지 않다. 다른 요구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라며 “조심스럽게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반 전 총장을 돕겠다는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정진석 이명수 경대수 박덕흠 이종배 성일종 박찬우 권석창 의원 등 8명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에 모여 탈당 여부를 논의했다. 정 의원은 회동 후 “당적 변경을 하지 않더라도 반 전 총장을 지지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뜻을 적극적으로 모아보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야권은 반 전 총장 제안을 정략적이라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 측은 “국민 요구와 동떨어진 정치권 이합집산에는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와 손학규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다.
새누리당 인명진 비상대책위원장도 언론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의 빅텐트론에 대해 “여기저기 다니면서 텐트를 치려고 하는데 안 될 것”이라며 “너무 꽁꽁 얼어서 (텐트의) 말뚝을 박기 어려울 것”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글=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개헌 연대’로 반전 모색… 새누리 충청권 의원들 ‘꿈틀’
입력 2017-01-31 18:04 수정 2017-01-31 2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