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트럼프發 보호무역風… 車·철강엔 ‘태풍’ 반도체 ‘무풍’

입력 2017-02-01 05:0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하게 내세우면서 세계 통상 질서도 급변할 조짐이다. 지난 세기 미국이 무역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관세장벽을 쌓았던 전례를 비춰볼 때 자동차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에 적잖은 파장이 우려된다.

미국이 20세기 들어 보호무역을 처음 주창한 시기는 1930년대였다. 1929년 뉴욕 증시가 폭락하면서 불황이 닥치자 미국 정부는 이듬해 ‘스무트-홀리법’을 제정한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관세를 대폭 올리는 게 이 법의 골자다. 주요 교역 상대였던 캐나다 프랑스 등은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국제 교역량은 대공황이 일어난 1933년까지 40% 넘게 감소했다. 미국의 수출과 수입량 역시 절반 넘게 감소해 경제 전반의 활력이 사라졌다. 학계 일부에서는 이를 대공황의 주요 원인으로 보기도 한다.

1970년대 들어 보호무역주의 카드가 다시 등장한다. 유럽, 일본과 신흥아시아 국가가 2차 대전 이후 급부상하면서 미국 산업을 위협한 게 이유였다. 이때의 보호무역은 취약산업을 직접 보호하는 것보다는 구조변화를 늦추는 게 목적이었다. 때문에 수량 제한이나 기술장벽 등 이전보다 간접적인 형태의 보호무역 조치가 잇따랐다. 미국은 이외에도 일본 등 주요 4개국과 ‘플라자 합의’를 맺어 환율을 조정,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금 상황이 1930년대보다는 1970년대와 가깝다고 본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북미팀장은 31일 “1930년대 미국이 관세장벽을 쌓은 캐나다나 유럽 등은 미국과 동등하거나 우위에 있어 보복관세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전망했다. 문남중 대신증권 연구원도 “현재의 상황은 1930년대보다는 1970년대와 유사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중국이 성장 속도가 느려졌음에도 (과거 미국처럼) 취약산업을 보호하느라 정책적으로 싼 가격을 유지해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경쟁력 제고를 위한 중국의 정책적인 노력에 따른 피해가 미국 등 주요 국가로 번지면서 보호무역 기조를 확산시켰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화살은 각 국가보다 자동차와 철강 등 취약산업을 향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표도 이 지역에 몰려있을뿐더러 모든 산업 부문에서 직접 전면전을 벌이기엔 출혈이 크다. 예전과 달리 세계무역기구(WTO)가 존재하는 것도 트럼프로서는 걸림돌이다.

다만 자동차 산업에 규제가 가해지면 이 부문 수출비중이 큰 한국은 직접 피해를 입을 전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미국이 교역 압박을 현실화할 경우 자동차·철강·기계 업종의 피해는 불가피하다”고 전망한 반면, “디스플레이, 반도체 등 정보기술(IT) 업종은 미국과의 교역 마찰에 한 발 비켜 나 있다”고 봤다.

김윤경 팀장은 “향후 세계적으로 역내무역 등 블록경제가 다시 강화될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국으로서는 미국 외 주요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대미 무역의존도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행히 당장의 무역 전망은 나쁘지 않다. 지난해와 달리 각국의 구매관리자지수(PMI) 등 대외여건이 예상보다 호전되면서 2014년 수준에 가까워졌다. 국제금융센터는 이를 근거로 올해 한국을 포함한 수출주도 국가들의 성장이 양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