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시인들 ‘촛불집회’ 기념 시집 발간

입력 2017-01-31 18:16
‘몇 백만 촛불 바다// 이 위대한 혁명/ 이 세계사 처음의 평화혁명// 이 촛불의 파도 위에 나왔네// (중략) 누구도/ 어느 누구도 나오셨네// 아 이 세상 어떻게 아름다움이겠는가.’(고은 ‘다 나오셨네’ 중)

‘우리는 안다, 세상은 달라져/ 이제 우리가 힘을 가졌다는 것을,/ 땀과 피와 싸움으로 얻은 힘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다시는 빼앗기지 않을 힘을 가졌다는 것을./ 이게 나라냐, 라는 한탄 속에 밴 나라 사랑도 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 우리 손에는 낫 대신 몽둥이 대신 촛불이 들렸다./ 쇠파이프 대신 짱돌 대신 촛불이 들렸다.’(신경림 ‘원무(圓舞)’ 중)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촉발된 주말 촛불집회가 어느 새 14차를 앞두고 있다. 대통령 탄핵 가결까지 이끌어낸 촛불집회를 기념하고 노래하는 시집이 31일 발간됐다. 실천문학사가 기획해 펴낸 ‘천만 촛불 바다’다. 고은 신경림 강은교 박노해 백무산 등 박근혜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오른 시인 61명이 참여했다.

실천문학사는 “이번 시집은 무너진 민주주의를 국민들이 광장에서 바로세우겠다고 나선 국민의 외침에 대한 시인들의 서정적 응답”이라고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신경림 시인은 “유신 때나 일어날 법한 일이 되풀이돼 처음엔 절망감이 들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나가면서 권력자가 잘못됐다고 해서 나라가 잘못되는 건 아니라는 희망을 봤다”고 했다. 이어 “이번 시집이 널리 읽혀 문화예술은 권력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시집 뒷편에는 ‘촛불집회 일지’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6367명 명단이 수록됐다. 시집 판매 수익금 일부는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업과 문화예술인의 권리증진 사업에 사용된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