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조선 6대 임금 단종(端宗)이다. 1441년(세종 23년) 문종의 외아들로 태어난 단종은 1452년 문종이 39세의 젊은 나이로 재위 2년 만에 붕어하자 12세에 임금으로 즉위했다. 그러나 1453년 수양대군(세조)과 한명회 등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단종의 생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1455년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명목뿐인 상왕으로 물러났다. 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돼 모두 처형되자 단종은 이듬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돼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다.
단종은 광나루를 건너 여주·원주·주천을 거쳐 영월의 관문 선돌을 지난다. 서강 절벽에 있는 선돌은 약 70m 정도의 거대한 입석으로 큰 칼로 절벽을 내리친 듯 쪼개진 형상이다. 단종이 신선같이 생겼다고 해 신선암으로도 불린다.
한양을 떠나 7일 만에 도착한 청령포는 물살이 빠른 서강으로 삼면이 둘러싸여 있고 한쪽 면은 육육봉(六六峰)의 험준한 암벽으로 막혀 있어 ‘육지 속의 외딴섬’이나 다름없었다.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유배지로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배를 타고 청령포에 내리면 빽빽한 금강소나무 숲 사이로 오솔길을 따라 유배 당시 거처인 단종어소에 다다른다. 본채인 기와집과 호위하던 시종들이 사용하던 초가집은 승정원일기의 기록에 따라 2000년 4월 복원됐다. 담장 밖에서 어소를 향해 엎드리다시피 길게 뻗은 소나무는 단종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여 단종의 시신을 수습한 인물의 이름을 붙여 ‘엄흥도 소나무’로 부른다.
울창한 송림 사이에 노송이 우뚝하다.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수령 600여년의 관음송(觀音松)이다. 단종의 슬픈 모습을 지켜보고(觀), 단종의 오열하는 울음소리를 들었다(音)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높이 약 30m, 가슴높이 둘레 약 5m의 크기로 1.6m쯤 되는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져 하나는 위로, 하나는 서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창살 없는 감옥’에서 단종은 이 소나무의 줄기에 앉아 시름을 달랬다고 한다.
청령포에는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다는 노산대, 한양에 남겨진 부인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은 돌탑인 망향탑, 단종의 유배지임을 알리기 위해 세운 단종유지비각, 일반 백성의 출입을 금하기 위해 1726년(영조 2년)에 세운 금표비 등이 있다.
유배 두 달만에 청령포가 범람해 물에 잠기자 단종은 영월 관아의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겨간다. 관풍헌은 1392년(태조 1년)에 세워진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동쪽 옆에는 작은 2층 누각이 서있다. 단종이 이 누각에 올라 밤이면 피를 토하듯 애처롭게 운다는 소쩍새(자규)의 한을 담은 시를 읊은 뒤 매죽루에서 자규루(子規樓)로 바뀌었다.
같은 해 경상도 영주 순흥에 유배됐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을 중심으로 한 복위 음모가 발각됐다. 금성대군은 처형되고 단종은 다시 노산군에서 서인(庶人·평민)으로 강등됐다. 한 달 뒤 왕방연이 갖고 온 사약을 받고 17세로 짧은 생을 마감한다.
영월의 호장(戶長·향리직의 우두머리) 엄흥도는 삼족이 멸하는 벌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도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수습해 동을지산에 묻었다. 오랫동안 위치조차 알 수 없던 묘를 1541년(중종 36년) 영월군수 낙촌 박충원이 찾아내 정비했다. 1681년(숙종 7년)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년) 단종으로 복위됐다. 능호는 장릉(莊陵)으로 정해졌다.
청령포에서 2.5㎞ 떨어진 장릉으로 들어가면 맨 오른쪽에 배견암(拜鵑岩)과 배견정(拜鵑亭)이 있다. 배견정 옆 ‘박충원 낙촌비각’에는 박충원이 꿈속에서 단종의 무덤을 찾은 일에 대한 사연이 기록돼 있다. 비각 옆으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왕릉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진다.
장릉은 다른 왕릉과 달리 높은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다. 멀리 능묘가 보이기 시작하면 주위를 둘러싼 울창한 소나무들이 능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모습이 애틋하다. 봉분 주위에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이 1쌍씩 세워져 있고, 능 양쪽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석마(石馬)가 서 있다. 난간석과 병풍석을 두르지 않았고 무인석도 없다. 능 입구에 마련된 단종역사관에서 단종의 탄생부터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기까지 단종과 관련된 자료를 볼 수 있다.
서강이 단종의 애환을 품고 흐른다면 동강은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풀어놓는다. 영월의 동강 풍경으로 빼어난 곳이 명승 14호 어라연(魚羅淵)이다.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이는 여울목’이란 뜻으로 동강의 하류인 거운리에 위치하며 일명 삼선암이라고도 불린다. 강의 상부, 중부, 하부에 3개의 소(沼)가 형성돼 있고 소 중앙에 암반이 물속으로부터 솟아있다.
어라연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산이 잣봉이다. 절벽에 뿌리를 내린 노송군락이 굽이치는 동강과 어울려 천혜의 비경을 펼쳐놓는다. 짧은 등산로와 동강변을 거니는 트레킹을 겸할 수 있어 각광을 받고 있다. 봉래초교 거운분교 앞에서 출발해 잣봉에 올라 동강의 아름다움을 굽어본 뒤 어라연 쪽으로 내려와 강가를 걸어 다시 거운분교로 돌아오는 약 9㎞ 코스가 인기다. 충분한 휴식시간을 포함해 약 5시간이면 족하다.
여행메모
거운교 건너 우회전 ‘잣봉 가는 길’
해장국·무침·전… 다슬기 요리 다채
수도권에서 영월로 가려면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중앙고속도로 제천나들목에서 빠진다. 이후 38번 국도를 따라 영월 방면으로 달리면 된다. 동서울터미널, 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버스가 운행 중이다. 청량리역에서 영월역까지 열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영월읍내에 장릉, 청령포, 별마로천문대 등 볼거리가 산재해 있다.
동강 어라연을 볼 수 있는 잣봉에 가려면 영월역과 동강터널을 지나 거운교로 향한다. 거운교를 건너 우회전하면 안내소가 나온다. 이곳에서부터 걸어가는 것이 좋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잣봉이, 오른쪽 길로 가면 동강 기슭인 만지동이 나온다. 만지동에서 강변 비포장길을 2㎞ 더 가면 길이 끝난다. 어라연까지 남은 1㎞는 돌밭과 모랫길이다.
동강가는 길에 왼쪽으로 동강시스타 콘도가 자리하고 있다. 동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에 스파시설을 갖춰 가족단위로 방문하면 알맞다.
영월에서 올갱이라 불리는 다슬기는 칼슘과 단백질 함량이 높고 숙취 해소에 좋아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해장국 외에도 무침, 전, 비빔밥 등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영월역 앞에 다슬기촌이 조성돼 있다. ‘동강다슬기’(033-374-2821)가 유명하다.
영월=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