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에서 가장 처참하게 상처 입은 곳이 문체부다. 장관 2명과 차관 2명이 잇달아 영어의 몸이 됐으니 재앙을 맞은 형국이다. 산하 기관장 인사는 오래전에 멈췄고, 공무원들은 장탄식 속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정상적인 국가조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다. 1990년 독립 부서로 창설된 이후 늘 외풍에 시달렸지만 이런 만신창이는 처음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박근혜정부 초기에는 밀월관계였다. 2013년 2월, 대통령이 유진룡 전 차관에게 장관직을 제안하면서 밝힌 내용은 지금 들어도 신선하다. 정치적으로 견해가 다른 문화예술인들을 끌어안고 가는 것, 우리 사회의 허약한 정신적 기반을 살찌우는 것! 전자에는 승자의 도량이 묻어났고, 후자는 문화정책의 방향으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유 장관도 화답했다. 당시 도정일 경희대 교수와 가진 언론 대담에서 대통령의 취임사에 등장한 문화융성에 대해 ‘단순한 문화예술 진흥을 넘어 우리 사회의 정신적 기반을 다시 세우는 것, 예컨대 소통 배려 나눔 같은 문화적 가치가 우선하는, 공동체가 함께 살아갈 만한 사회가 되도록 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융성’이라는 복고풍 어젠다에 대한 깔끔한 해석이었다. 그게 2013년 6월이었다.
그리고 1년 후인 2014년 7월 장관은 경질된다. 해외출장 중에 해임통보를 받고, 나중에 이례적으로 면직처분까지 받았으니 감정이 실린 조처였다. 청와대와 사이가 틀어진 1년 동안 문체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말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고, 팔순의 자니 윤이 논공행상에 올랐으며, 무시무시한 블랙리스트가 유령처럼 떠돌았다. 이후 공포의 외인구단주가 부처를 점령했다.
문체부가 농단을 당하는 동안 공무원들은 아침저녁으로 영혼의 존부를 체크했고, 기안하고 결재할 때마다 양심의 무게를 재 보았을 것이다. 요동치는 조직의 위상에 번민하고, 생면부지의 인물이 장차관으로 내리꽂힐 때 좌절했을 것이다. 영문도 모른 채 진행되던 일들이 나중에야 퍼즐을 맞추듯 알게 됐을 때 느꼈을 자괴감이 어떠했겠나.
그래도 그들은 의연했다. 2명의 ‘나쁜 사람’은 위험을 감지하고도 공무의 본령에서 이탈하지 않았다. 1급 간부 3명은 감히 블랙리스트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옷을 벗었다. 진실한 사과만이 그들의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줄 수 있다. 전문가 그룹 중에서는 프랑스 장식미술전을 거부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용기를 기억한다. 물론 경우에 따라 그런 성격의 전시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단은 청와대가 아니라 학예사의 몫이다. 외규장각 의궤도 돌려받지 못한 상황에서 그들의 명품 홍보를 위해 나라의 자존심인 중앙박물관을 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좌우를 넘어선 보편적 인식이다. 문화는 양식장에서 자라는 진주가 아니라 야생의 들판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예술가는 왕왕 권력에 저항하고 기성의 질서를 전복하려 든다. 길들이려 하기보다 거두어야 한다.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을 받은 한석규의 수상소감이 그 연장선에 있다. “가치가 죽고, 아름다움이 천박해지지 않기를… 다른 것이 불편하게 생각되면 포용할 수 있지만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더불어 어우러질 수 없다….”
이번 파동에서 굳이 소득으로 꼽자면 앞으로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문체부를 연탄재처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시조 이어령과 중시조 유진룡을 거치면서 형성된 문화행정의 철학, 예컨대 이념을 넘어 인간의 가치 있는 삶에 봉사한다는 지향성을 공인받았기 때문이다. 자긍심 가득한 문체부 공무원들에게 부탁이 있다면 평창올림픽에 승부를 걸라는 것이다. 문화와 체육, 관광과 미디어를 총괄하는 전문가 집단의 진면목을 보여줄 기회 아닌가. 정권이 아닌 그대들이 사랑하는 국가를 위해.
[청사초롱-손수호] 문체부 함부로 차지 마라
입력 2017-01-31 17:27 수정 2017-02-01 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