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평양 방문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다음 날인 4월 5일 미국 출장길에 올랐다. 평양 방문 2주 전에 로스앤젤레스(LA) 동양선교교회 주선으로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큰 어린이 단체인 WOI(World Opportunity International)로부터 의약품을 지원받게 됐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사연은 이랬다. 동양선교교회 집사 한 분이 세탁소를 하는데, 노신사가 “너무 친절하게 해줘 고맙다”며 명함을 건넸다. WOI 회장 로이 매큔 목사였다. 그는 한민족복지재단 얘기를 듣고 지원을 약속했다. WOI가 보내온 리스트에는 항생제 영양제 탈지면 거즈 등 컨테이너 4개 분량이나 됐다.
출장의 임무는 WOI로부터 지속적인 지원과 함께 캐나다 바이타프로(Vita-Pro)사로부터 600만 달러어치 영유아용 이유식을 기증받는 것이었다. LA공항에 도착하자 마중나온 임승표 장로는 교회 게스트하우스에 짐만 내려놓고 곧장 WOI 사무실로 가자고 했다. 매큔 회장은 내게 왜 북한 어린이를 도우며,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설명해달라고 했다. 서울을 출발할 때부터 간절히 기도해왔던 터라 담대한 마음으로 5분쯤 설명하자, 갑자기 “할렐루야”라고 말하더니 나를 껴안아주었다.
나는 후일 바이타프로의 탁월한 효과에 대해 자순녀 과장에게 들었다. 바이타프로는 콩이 주성분인 이유식으로 10일간 어린이들에게 먹였더니 몸무게가 180g 늘었다고 했다.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0개에 유통기한도 충분히 남아 있어 영양이 부족한 북한 어린이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이후에도 WOI는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미국 출장을 마치자 구충제를 해결해야 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도 온통 그 생각뿐이었다. 세미나에서 만난 보건복지부 오대규 건강증진국장에게 자문을 구하니, 대뜸 한국건강관리협회 임한종 회장을 소개했다. 그는 경동교회 장로였다.
임 회장은 필생의 소원이 북한 어린이에게 구충사업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물론 러시아 중국을 통해 여러번 접촉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는 내 얘기를 듣고는 신풍제약 장용택 회장과 통화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가 원료비를 부담하면, 신풍제약에서 구충제를 무상으로 제조해주기로 합의했다. 250만명분의 구충제가 한 번에 해결된 것이었다.
임 회장은 가슴에 맺힌 얘기를 꺼냈다. “서울대 의대 은사였던 라순영 박사가 6·25전쟁 때 납북된 후에도 북한에서 활동하며 기생충에 관한 논문을 국제저널에 계속 발표하는 것을 알고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데, 생사여부라도 한번 알아봐주면 좋겠습니다.” 9월 19일부터 임 회장과 평양을 방문했다. 한국건강관리협회와 대표단조선의학협회가 5년간 집단구충사업을 공동 진행하는 합의서를 체결했다. 기생충 없는 한반도를 만들려는 필생의 꿈이 이뤄졌다.
방북의 하이라이트는 임 회장이 스승 라순영 박사를 만나는 것이었다. 21일 밤 고려호텔에서 조선기생충학회장인 라 박사를 만나 감격의 포옹을 했다. 라 박사는 찬송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를 작곡한 고 라운영 선생의 친형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은 기적을 선물하신다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정리=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역경의 열매] 김형석 <11> 美 WOI 회장, 5분 면담 후 “할렐루야”… 지원 약속
입력 2017-02-01 00:07 수정 2017-02-01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