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겨울 아침. 잔설이 쌓인 마당을 쓸던 윤 화백이 문득 비질을 멈췄다. 싸리비가 만들어낸 무늬에 새삼 눈길이 갔던 것이다. 어떤 붓질로도 표현할 수 없는 추상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 ‘유레카’를 외쳤다.
윤명로(81) 화백은 팔순을 앞두고 변화를 시도한 ‘싸리비 추상화’의 탄생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싸리비에 묻힌 물감이 스친 캔버스에서는 눈발이 분분한 것 같기도 하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다. 파도의 격랑이 휘몰아치기도 한다. “내면의 풍경” 같다고 했더니 “아무려면 어떠냐”며 빙그레 웃었다. 캔버스에 마구 물감을 뿌린 미국의 추상미술 대가 잭슨 폴록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동양 문화권에서만 발명할 수 있는 표현방법이다. 서양화이면서도 동양 수묵화의 일필휘지가 거기 있었다.
윤 화백이 50여년 화업을 정리하는 회고전 ‘윤명로, 그때와 지금’전을 갖고 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최근 그를 인터뷰했다.
“디지털 시대에 철물점에서 산 2000원 짜리 싸리비로 이런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게 저도 놀라워요. 싸리비의 흔적은 붓이 절대 흉내를 낼 수 없지요.”
‘싸리비 시리즈’는 2000년대부터 시작해온 ‘겸재 예찬 시리즈’의 연장선에 있다. 서울대 교수였던 그는 2002년 정년퇴직 후 가진 첫 개인전에서야 수십 년 붙들어온 화두를 풀었다. 1960년대 후반 호암박물관에서 ‘인왕제색도’를 실견하고 큰 감동을 받은 그는 겸재의 정신을 어떻게 서양화에서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겸재는 중국식 관념산수가 지배하던 시대, 우리식 산수를 개척한 파격의 화가였다. 우연히 을지로 공구 상가에서 ‘발견’한 쇳가루가 답이 됐다. 철화백자의 ‘붉은 색’처럼 그의 그림에서도 철이 산화하면서 내는 붉은 색의 추상이 펼쳐진다.
“동양화에서 벗어던지지 못하는 게 먹입니다. 요즘 시대, 지필묵을 써서 그린다는 건 난센스입니다. 재료 변화가 없는 한 똑같은 거예요. 쇳가루를 쓰면 먹으로 일필휘지한 듯한 효과를 내지요.”
윤 화백은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9년 국전에서 특선했다. 구상이 판치던 시대, 추상 작품으로 상을 받았다.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의 소설 ‘벽’을 읽고 느낀 감동을 추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이렇듯 추상에서 발원했다. 그러면서 10년 단위로 화풍이 변했다. 프랑스 앵포르멜의 영향을 받은 끈적끈적한 느낌의 초기작부터 단색화적 경향을 띄는 70년대의 ‘균열 시리즈’, 춤추는 댓잎을 연상시키는 80년대의 ‘얼레짓 시리즈’, 응축된 에너지가 폭발하는 듯한 90년대의 ‘익명의 땅 시리즈’….
“한 우물을 파는 것도 좋지만 변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요?”
이렇게 되묻는 노 화가의 표정에서 주마등처럼 과거가 흘러갔다. 추상이라는 거대한 초원 위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노마드적 삶이다. 윤 화백의 화업 50년 변천사를 조망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3월 5일까지(02-730-1020).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yosohn@kmib.co.kr
윤명로 화백 “싸리비가 만들어낸 무늬, 붓으로 흉내낼 수 없어요”
입력 2017-02-01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