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소장 공백 상태에서 대통령 탄핵심판을 심리하는 전례 없는 길을 걷게 됐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31일 오전 11시 퇴임식을 끝으로 헌법재판관 6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다. 향후 탄핵심판은 이정미 재판관의 임시 권한대행 체제로 진행된다. 9명의 재판관 중 1명이 모자란 8인에게 탄핵 선고가 맡겨졌다.
박 소장은 이날 퇴임사를 통해 선고 일정 등에 대한 마지막 메시지를 던질 예정이다. 그는 지난 25일 9차 공개변론에서 “헌재소장 또는 재판관이 공석인 헌법적 비상상황이 재발했다”며 “3월 13일까지 최종 결정이 선고돼야 한다”고 말했다. 3월 13일은 이 재판관의 마지막 출근일이다. 이날까지 탄핵심판 선고가 이뤄지지 않으면 심판 정족수인 7명의 재판관이 심리를 진행하게 된다. 탄핵이 인용되려면 재판관 6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재판관 사퇴 등 돌발 변수라도 생긴다면 심판 자체가 미궁에 빠질 수 있다.
3월 13일 전에 탄핵심판 선고기일이 열리려면 변론 절차가 늦어도 2월 내 종결돼야 한다. 재판관 평의와 결정문 작성 등에는 통상 2주가 소요된다. 하지만 헌재 앞에 놓인 장애물은 첩첩산중이다. 박 대통령 측 대리인단이 일괄 사퇴를 암시하는 등 심판 속도를 늦추면서 자신들의 항변을 충분히 길게 가져가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도 지난 설 연휴 직전 인터넷 방송 정규재TV와의 인터뷰에서 “공정한 재판이 이뤄지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었다.
박 대통령 측은 헌재가 채택하지 않은 증인 29명을 오는 1일 10차 변론기일에 다시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헌재가 증인 신청을 더 받아들이면 그만큼 변론기일도 길어진다. 헌재가 신청을 기각하면 대리인들은 피청구인(박 대통령)의 방어권 보장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를 들며 일괄 사퇴 카드를 꺼낼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에도 박 대통령 측은 새로운 대리인을 선임해 기록을 다시 검토한다는 명분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박 대통령 측이 심리 지연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탄핵 기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만약 2명의 재판관이 탄핵에 반대할 경우 9인 체제였다면 소수의견으로 그칠 일도 8인 체제에서는 겨우 인용되고, 7인 체제에서는 박 대통령이 복귀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박 소장도 “(자신에 이어) 재판관 1인이 추가 공석될 경우 이는 한 사람의 공백을 넘어 심판 결과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며 “탄핵 심리·판단에 막대한 지장을 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한 바 있다.
결국 8인의 재판관이 박 대통령 측 요구를 어디까지 수용하고 반발을 어떻게 법리적으로 다잡을 수 있느냐에 탄핵심판 일정이 좌우될 전망이다. 헌재는 오는 9일까지 증인신문 일정을 모두 확정했다. 일정이 잡히지 않은 증인은 김형수 전 미르재단 이사장 등 3명뿐이다.
이 재판관은 1주일 내로 재판관회의를 열어 권한대행자를 선출해야 한다. 이 재판관 임기가 41일 남은 상황에서 남은 재판관 7명 중 1명이 권한대행자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투데이 포커스] 헌재, '朴측 시간끌기' 다잡기에 달렸다
입력 2017-01-30 17:22 수정 2017-01-30 2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