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에 치른 과거 대선은 통상 추석 민심을 통해 향배를 가늠해보곤 했다. 탄핵심판 결과에 따라 ‘벚꽃 대선’이 현실화될 경우 이번 설은 과거 대선의 추석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탄핵이 인용되면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석 달 앞두고 민족 대이동이 있었다. 명절 여론은 귀성 행렬과 함께 입에서 입으로 전파되고 형성된다. 각 지역, 세대, 계층의 생각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정리되기에 그 여론을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만들려고 대선 주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연휴가 끝난 지금 설 민심 성적표를 받아든 후보들에겐 자성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명절 밥상에서 수렴된 가장 확실한 여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잘못했다”와 “먹고살기 힘들다”였다. 정치와 경제가 모두 망가졌으니 서둘러 새 지도자를 세워 수습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럼 어떤 지도자가 다음 정부를 이끌어야 하는가. 이 질문에선 이렇다 할 여론의 흐름이 발견되지 않는다. 어떤 후보도 국민의 마음에 와 닿는 말을 하지 못해 대세론과 합종연횡의 대결이 돼버린 지리멸렬한 대선판이 미적지근한 설 민심에 전이된 듯하다.
국민일보 취재진이 설 연휴에 각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을 인터뷰한 내용, 명절을 맞아 지역구에 갔던 국회의원들의 전언, 각 정당이 분석한 설 민심 논평 등을 종합하면 기존의 어정쩡한 판도에 변화를 일으킬 만큼 명절 밥상에서 이야기된 대선 주자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여전히 호남에서 마음을 얻지 못했고,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고향인 충청권 유권자나 중도·보수층 유권자에게 아직 미심쩍은 시선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를 비롯한 나머지 후보들의 존재감은 그 지지율만큼 허약하다. “저 후보가 이런 얘기를 했더라” 대신 “누가 누구와 합치면”이란 말이 대선 이야기에 훨씬 많이 등장한다. “이래서 저 후보가 좋다”는 말보다 “저 후보는 이런 게 문제”라는 말이 더 많이 들린다. 아직 선거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해도 이 나라를 바꿔보자며 광장에 나섰던 국민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고 있음을 대선 주자들은 인정해야 한다.
선거는 결과 못지않게 과정이 중요하다.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채 선거의 공식에 따라 절반의 표심으로 당선된 이들이 어떤 지도자가 되는지 우리는 박 대통령을 통해 목격했고 트럼프의 미국에서 확인해가고 있다.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여소야대 정권을 꾸려가야 한다. 어느 정권보다 국민에게 동력을 달라고 직접 호소할 일이 많을 것이다. 지도자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면 선거 과정에서부터 더 많은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세론이나 합종연횡 같은 세몰이로는 공감을 얻어낼 수 없다. 설득은 진정이 담긴 약속, 고뇌가 들어 있는 정책, 그것을 실천하려는 의지로 하는 일이다.
[사설] 지리멸렬한 대선판, 미적지근한 설 민심
입력 2017-01-30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