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교회 24시] 눈 쓸어 길 내고 겨울철 산골교회 더 바빠… 마을회관으로 출근해 어르신 섬겨

입력 2017-02-01 00:06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 자리 잡은 고양리교회. 교회 주변에 눈이 쌓여있다. 고양리교회 제공
손호경 목사(왼쪽 첫 번째)가 지난해 9월 교회 앞마당에서 교인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고양리교회 제공
지난해 8월 손 목사(가운데)가 교인들과 함께 지역 주민의 지붕 보수 작업을 하는 모습. 고양리교회 제공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문래산 중턱의 해발 530미터. 군에서 면으로 이어진 찻길이 끊기는 마지막 동네엔 골짜기를 따라 난 굽잇길에 57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100명 남짓한 주민들이 식구처럼 살고 있는 동네 한 가운데엔 하얀색 십자가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바로 손호경(53) 목사의 보금자리인 고양리교회입니다. 손 목사는 “눈이 소복이 쌓이는 요즘 같은 때는 새하얀 바다 위에 하얀 지붕을 단 통통배가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떠다니는 장면을 볼 수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손목사의 발걸음은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철 동이 트고 난 뒤 더 빨라집니다. 드문드문 자리잡은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쌓인 눈을 쓸고 길을 내기 위해섭니다. 주민 평균연령이 70대 중반을 훌쩍 넘긴 초고령마을이지만 청년 같은 손 목사와 ‘60대 청춘’이라 자칭하는 어르신들이 함께 빗자루를 들면 홍해의 기적처럼 쌓인 눈 사이로 길이 생깁니다.

농사일도 방학을 맞은 요즘 손 목사의 출근길은 마을회관으로 향합니다. 집보다 뜨끈한 아랫목을 갖춘 이곳이 겨울철 동네 주민들의 사랑방이기 때문입니다. 손 목사는 “어머니 아버지 같은 어르신들의 무릎, 팔도 주물러드리고 고스톱 치는 어르신들 곁에서 호응도 해드리며 두런두런 얘기 나누다 보면 어느새 하루해가 저문다”며 웃었습니다.

정선에서 태어난 손 목사가 고향에서 산골목회를 시작한 건 2007년. 이곳에서 목회하기까지 그는 꽤나 먼 길을 돌아와야 했습니다. 경기도 안양 평촌동, 경남 창원 마산구 등에서 빈민 구제사역을 하던 손 목사는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목회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에 상처를 입은 채 경남 통영으로 내려가 쌍끌이 어선을 탔다가 파상풍에 걸려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손 목사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금식기도를 한 끝에 ‘한 생명이라도 맡겨 달라’는 마음으로 고향에 돌아왔다”고 고백했습니다.

처음 마주한 고양리교회 모습은 충격적이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십자가는 꺾여 있었고 유리창은 깨진 채 파편이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과거 사역하시던 목사님이 2004년 소천하신 뒤 3년째 목회가 중단된 상황이었죠. 폐허가 된 교회의 모습이 마치 목회를 중단했던 당시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이곳에 다시 십자가를 세워야겠다’고 마음먹은 지 10년. 57가구 중 기독 신앙을 가지고 있는 주민은 12가구, 20여명뿐이지만 손 목사의 기도는 오늘도 산골마을의 겨울을 녹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산골에 사람 낚는 어부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생명이라도 더 건져내야지요(웃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