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의 소년 산체스, EPL ‘황금발’ 됐다

입력 2017-01-26 16:48
아스날의 알렉시스 산체스가 지난 22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에서 열린 번리와의 2016-201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2라운드 홈경기에서 경기 종료 직전 페널티킥을 성공시켜 팀의 2대 1 승리를 이끈 뒤 기뻐하고 있다. AP뉴시스

그의 고향은 칠레 산티아고에서 북쪽으로 1600㎞ 떨어진 곳에 있는 토코피야다. 황량한 공업도시의 빈민가에서 태어난 그는 맨발로 축구를 했다. “돌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살짝 점프하며 달리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린 시절 너무 가난해 축구화를 살 수 없었던 알렉시스 산체스(29). 그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볼을 찼고, 마침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공격수로 떠올랐다.

산체스는 26일(한국시간) 현재 15골로 디에고 코스타(첼시)와 득점 공동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 영국 스포츠 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가 매긴 EPL 시즌 랭킹에서 코스타를 제치고 1위에 올라 있다.

놀라운 사실은 산체스가 팀을 옮길 때마다 디에고 시메오네(리버 플라테), 마르셀로 비엘사(칠레 국가대표팀), 호셉 과르디올라(FC 바르셀로나), 아르센 벵거(아스날) 등 축구 철학과 개성이 다른 명장들을 모두 홀렸다는 것이다. 헝그리 정신으로 볼을 차는 그의 플레이엔 허세가 없다. 또 패배를 증오하는 것처럼 뛰기 때문에 감독들은 그에게 반할 수밖에 없었다.

산체스의 아버지는 그가 태어난 직후 가족을 버리고 토코피야를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생선을 손질해 내다 팔며 생계를 꾸렸다. 어린 산체스는 세차를 하고, 막노동에 광부 일까지 하며 돈을 벌었다. 그의 유일한 낙은 외삼촌이 사준 축구공을 차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빌려 온 축구화를 신고 경기를 뛰던 그는 15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자기 축구화를 가졌다. 그가 맨발로 볼을 차는 것을 본 토코피야 시장이 선물한 것이었다.

산체스는 16세이던 2005년 코브레올라(칠레)에서 1군에 데뷔했다. 2007년 1월 우디네세 칼초(이탈리아)에 입단한 그는 곧바로 콜로콜로(칠레)에 임대됐다. 2007년 7월부터 2008년 6월까지 리버 플라테(아르헨티나)에서 임대 생활을 한 그는 재능을 인정받아 2011년 7월 바르셀로나에 입성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의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은 산체스에 대해 “멀티플레이어로서 경기에 대한 감각을 타고 났다. 게다가 인품까지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그는 산체스에게 스트라이커가 다는 상징적인 등번호 9번을 줬다.

산체스는 2013-2014 시즌 네이마르(9골)보다 훨씬 더 많은 19골을 넣었지만 주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2014년 7월 아스날로 이적했다. 그는 2014-2015 시즌 팀 내 최다인 16골을, 지난 시즌엔 13골을 기록했다. 이번 시즌 아스날은 산체스의 활약에 힘입어 리그 14승5무3패(승점 47)로 2위를 달리고 있다. 산체스의 전기 ‘알렉시스:스타의 여정’을 공동 집필한 니콜라스 올레이는 “산체스에게 행운 같은 것은 없었다. 단지 힘겨운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고 강조했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산체스는 밤의 유흥을 멀리한다. 그의 일상은 절제의 연속이다. 그는 선행을 많이 하는 선수로도 유명하다. 2015년 8월 고향이 홍수로 피해를 입자 구호물자를 보냈다. 지난해 3월엔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고 싶다”며 고향에 축구장을 두 개나 만들었다. 바르셀로나 시절 초상권 수익을 신고하지 않는 등 98만3443 유로(약 12억2000만원)를 탈세한 것이 유일한 오점으로 지적된다. 다만 그는 이를 순순히 인정하고 벌금형 등을 감수키로 하는 등 솔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