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네 동네 저녁께 그림 한 번 떠올려보자. 민국이가 친구들과 놀고 있다. 저녁밥 먹을 시간이 되는 줄도 모르고 논다. 엄마가 민국이를 찾으러 나왔다. “민국아, 민국아!” 동네에 민국이가 있을 만한 곳을 다니면서 부른다. 엄마가 민국이를 찾았다. “민국아, 밥 먹어야지. 어서 들어가자.” 민국이가 친구들을 놔두고 금방 엄마를 따라간다.
이런 상황이면 민국이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나이일 테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에 다니는 정도면 엄마가 부른다고 금방 따라가지는 않는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 지금 상황을 그냥 관둘 수 없다. 지금 하는 게임이라도 끝나고 나서 집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이지만 자신의 사회적 관계도 있는 것이다. “좀 더 있다가 들어갈 게요. 엄마 먼저 드세요” 할 정도의 나이면 아이 나름의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 엄마에게 다른 생각을 얘기할 수도 있고 저녁을 안 먹을 수도 있다. 엄마의 생각보다 자신의 판단이 더 우선일 수 있다.
민국이가 자기 공을 갖고 친구들과 놀고 있다고 생각해보자. 엄마가 부를 때 공까지 갖고 금방 엄마를 따라 집으로 간다. ‘내 공이니까’ 그럴 수 있다. 놀던 흥이 다 깨진다. 공이 없으니까 게임도 더 못한다. 친구들이 다 흩어진다. 민국이가 엄마를 따라가더라도 공은 친구들에게 놔둘 수 있다. 그 정도만 해도 친구들과의 인간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자신의 판단을 갖고 스스로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것이 사람이다. 어른이 된다는 뜻은 책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며 사회생활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내가 손해를 보거나 불리해지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서 있는 위치에서 마땅히 저답게 행동하면서야 미성년을 벗어난다. 외부에서 상당한 압력이 밀려올 때 이런저런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할 말을 하며 자기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민국이가 언제나 철없는 아이를 벗어나서 어른이 될까. 민국이 이름의 한자를 생각해보라. 민국(民國), 성은 대한(大韓)이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서 민국이는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관제데모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자유당 시절에 정치깡패를 동원한 것과 구조로 보면 다를 바 없다. 21세기이다보니 형태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은 위증 처벌보다 청와대의 압박이 더 무서웠다고 실토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해석이나 관점이 다를 수는 있어도 정경유착이 빤한 상황을 이리저리 합리화하는 것은 학자나 지식인으로서 일말의 자존심까지 내팽개친 작태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나타난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심장으로 끌어안고 있다. 이 기초 위에서 일반계시의 덕목을 세움으로써 건강한 영향력을 갖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이끌어간다. 법치의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인도적 윤리도덕, 적어도 이 셋은 기독교 정통신앙을 가진 사람으로서 부인할 수 없는 일반계시의 중심 가치다. 시장판이나 속물적인 정치판에 널린 ‘보수니 진보니’ 하는 말을 따라 눈앞의 이해관계를 좇는 데 십자가나 기독교의 이름을 내거는 행태는 복음의 자존심을 스스로 짓밟는 것이다.
국민이 주인인 것을 자각하지 못하면 민주란 이름이 부끄럽다. 대통령이란 직책은 국민이 뽑은 공복이다. 청와대가 궁궐이 아니다. 민국이는 아직도 대통령을 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청와대나 대통령과 연관하여 왕조 시대의 어휘나 구조에 빗대어 기사를 쓰는 언론도 알게 모르게 그런 착각에 빠져있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제가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깊이 자각해야 민국이가 살 테다.
지형은 성락성결교회 담임목사
[바이블시론-지형은] 민국아, 민국아
입력 2017-01-26 1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