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기슭에 있는 우리 집은, 교통은 좀 불편하지만 경치는 그만이다. 요즘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는 산자락을 내려다보는 호사를 누린다. 최근 이십 년 사이에 이사를 일고여덟 번은 한 것 같은데, 이 자리에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한다. 눈은 호사지만 마음이 아릴 때도 있다. 집에 들고나는 길이나 가끔 새벽에 오르는 산에서 마주치곤 하던 길고양이며 유기견들 때문이다. 어느 날은 꾀죄죄한 꼬마 고양이가 나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온 때가 있었다. 마침 싸들고 있던 닭고기를 내려놓자 녀석은 정신없이 달려들었다. 길 가던 중학생 여자아이들이 녀석을 에워싸는 틈에 나는 슬그머니 물러섰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길고양이를 또 들이기에는 애로사항이 너무 많다. 어느 아침은 산길 중간 벤치에 앉아 있다가 요란하게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뒤돌아보고 떠돌이 개 너덧 머리를 발견한 적도 있다. 녀석들은 힘차게 산비탈을 뛰어 내려가는 중이었다. 그래, 멧돼지라도 하나 사냥해서 실컷 배 불리기를 바란다, 얘들아. 나는 속으로 응원했다.
이 추위를 어떻게 견뎌내고 있을까. 버림받았건 야생의 부모에게서 태어났건, 밖에서 살아야 하는 조건이 지워졌으니 있는 힘을 다해 살아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마음 아린 채로 보아낼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이 사람에게 해코지 당하는 일을 보는 건 정말 힘들다. 며칠 전에는 제천 어느 카페에서 길고양이가 돌에 맞아 죽었다. 길고양이답지 않게 애교가 많은 녀석이었다고 한다. 사람을 믿고 따른 대가가 너무 가혹하다. 그렇게 정확하게 돌을 던져 즉사시킨 사람은, 작은 동물은 그렇게 다뤄도 된다고 여겼던 걸까.
홍수가 지난 후 노아가 땅에 내리자 하나님은 무지개를 띄워 다시는 너희를 멸하지 않겠다는 언약을 세우신다. 그 때 그 대상은 ‘나와 너희와 혈기 있는 모든 생물’이었다. 개도 고양이도, 하나님과 인간과 함께 영원한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살아 있는 피조물이다. 그들을 재미로 함부로 죽일 권리는 어떤 인간에게도 없다.
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그래픽=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그럴 권리는 없다
입력 2017-01-26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