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품보다 편한 곳이 어디 있냐고? 다른 곳 어디에나!” 에르베 바쟁의 소설 ‘손아귀에 든 독사’는 ‘홈 스위트 홈’이라는 오랜 믿음을 향해 이처럼 신랄한 독설을 날린다. 고달픈 세상살이 끝에 따스한 위안을 얻을 피난처, 혹은 서로 끊임없이 상처를 주고 받는 전쟁터? 가족이란 이름의 복잡미묘한 관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나 비슷한 모습일 터. 오랜만에 재회한 가족의 점심 식탁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자비에 돌란감독의 신작 ‘단지 세상의 끝’이 “얼마 전, 어딘가에서”라는 자막으로 시작되는 이유일 것이다.
34세의 성공한 극작가 루이(가스파르 윌리엘)는 12년 만에 처음으로 가족을 만나러 간다. 그에게 주어진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접 알리기 위해서다. 쾌활한 엄마(나탈리 바이)는 음식을 준비하며 마냥 들떠있고, 여동생 쉬잔(레아 세두)은 낯선 오빠에게 하고픈 말이 많다.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불만에 가득 차 있다.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과는 이제야 처음 인사를 나눴다. 루이는 과연 품고 온 말을 꺼낼 수 있을까?
프랑스의 최고 스타배우들이 모여 탁월한 연기의 조화를 빚어내는 이 영화는 캐나다 퀘벡 출신 감독 자비에 돌란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2016 칸영화제 그랑프리와 기독교심사위원단상을 수상했다. 2009년 불과 20세의 나이로 칸영화제에서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선보인 그는, 2014년 ‘마미’로 세계적 거장 장 뤽 고다르와 함께 심사위원 대상을 공동 수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감독 스스로 “성인으로서 만든 첫 영화”라 평하는 이번 작품은 전작들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창작 시나리오를 고수하던 방식 대신, 장 뤽 라가르스의 대표작인 동명의 연극을 각색했다. 장면 해설이나 지문 없이 오직 대사로만 이뤄진 이 심오한 희곡을 영화로 재해석하는 방식은 매우 영민하고 노련하다. ‘하트비트’ ‘로렌스 애니웨이’ 등에서 보여준 감각적 영상과 도발적 화법을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을 법한 ‘원숙함’이다.
그 원숙함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인물의 말과 감정선만으로 탄탄한 긴장감을 이끌어내는 데서 빛을 발한다. 루이가 전할 소식은 일종의 시한폭탄과도 같다. 주어진 시간은 한나절. 언제 그 폭탄이 입술을 통해 터져 나올지 우리는 숨죽여 지켜보게 된다. 엄마의 수다와 앙투안의 고함, 쉬잔의 저속한 말투 사이로, 마치 말을 배우기 시작한 외국인처럼 힘겹게 단어를 고르고 수정하기를 반복하는 카트린의 어눌함과 루이의 침묵이 교차되며 긴장을 증폭시킨다.
“저, 떠나기 전에 모두에게 할 말이 있어요.” 가족이 모인 밥상머리에서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거나 던져보았을, 심장의 박동을 순간 멎게 하는 한마디. 기나긴 점심식사가 디저트로 마무리될 무렵, 루이가 마침내 말문을 연다. 지극히 단순한 이 문장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어진다. 어떤 말이 뒤따를지는 여기서 밝히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가장 큰 명절 중 하나가 끝났다. 언제부턴가 명절의 연관검색어로 ‘즐거움’보다 ‘스트레스’가 먼저 떠오르게 되어버렸다. 오랜만의 귀향과 가족 모임이 마음에 어떤 무늬를 남겼든, 설 연휴 직후 만나는 이 영화는 더욱 큰 울림을 안겨줄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하는 걸까? 아니,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 걸까? 너무나 친숙하지만 결국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서로를 단지 조금만 더 사랑할 수 있기 위하여.
<영화학 박사>
[여금미의 시네마 패스워드-영화 ‘단지 세상의 끝’] 가족, 그 친숙한 이방인
입력 2017-01-31 00:01 수정 2017-01-31 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