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9시40분. 서울 서초동 대법원 1호 법정은 아직 잠겨 있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해자 조중필(사망 당시 22세)씨 어머니 이복수(75)씨는 어깨에 둘러멘 가방도 벗지 못한 채 남편 조송전(77)씨와 함께 법정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아들을 잃은 지 19년9개월22일. 진범에 대한 마지막 선고까지 30분이 남아 있었다.
오전 10시16분 박보영 대법관이 주문을 읽었다. “사건번호 2016도15526 피고인 아서 존 패터슨. 피고인의 상고를 기각한다.” 패터슨(38)에게 징역 20년형이 확정된 뒤에도 어머니는 한동안 방청석을 떠나지 못했다.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간 이씨를 향해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졌다. 잠시 고개를 숙인 이씨는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20년 전에는 앞이 캄캄했는데 이렇게 진범이 밝혀져서 마음이 편합니다. 아들이 죽었는데 살인범이 없어가지고…. 진범이나 좀 밝혔으면 했는데 이렇게 밝혀져서 정말 감사드리고 마음이 홀가분합니다. 하늘에 있는 우리 중필이도 한(恨)을 풀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이날 살인 혐의로 기소된 패터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태원 살인사건의 사법 절차는 이걸로 종결됐다. 패터슨과 함께 공범으로 지목된 에드워드 리(38)는 1999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터라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
이씨는 “우리 가족도 한을 풀게 됐다”며 “패터슨이 미국으로 도망갔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는데, 영화도 나오고 언론이 보도하니 20년 후 이렇게 판결이 났다”고 말했다. 패터슨을 18년 만에 법정에 세운 검찰에 대해서는 “섭섭함과 고마움이 뒤섞인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패터슨은 98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난 뒤 다음 해 검찰이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않은 틈을 타 미국으로 도피했다. 당시 수사검사는 소속 직원의 구속과 인사이동 등으로 혼란스러워 연장 신청을 챙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어머니는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09년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개봉하고 언론 보도가 이어지며 재수사 여론이 겨우 고개를 들었다. 결국 검찰은 2009년 9월 미국 당국에 패터슨에 대한 범죄인 인도를 요청했다.
이씨는 “과거 검사들이 너무 성의가 없어서 검찰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사람인 줄 알았다”며 “그런데 이번 패터슨을 기소한 박철완 부장검사는 정말 성의 있게 잘 해주셨다”고 말했다.
박 부장검사는 혈흔·목격자 진술 등에 대한 보강 수사를 벌인 뒤 2011년 12월 패터슨을 진범으로 기소했다. 리를 비롯해 당시 현장 수사를 벌였던 경찰관과 혈흔 분석 전문가 등이 증인으로 나왔다. 범행이 이뤄졌던 패스트푸드점 화장실 구조를 재현해 현장 검증까지 이뤄졌다. 1심 재판부는 리와 패터슨 중 상·하의와 양말에 많은 피가 묻어 있던 패터슨을 진범으로 인정했다. 항소심에 이어 대법원도 이 판단을 받아들였다.
이씨는 “리도 똑같이 나쁜 짓을 했는데 왜 벌을 안 주는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조씨의 아버지 조송전씨는 “다른 범인이 더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냥 (가슴에) 묻으려고 한다”며 “가끔 아들 꿈을 꾸는데. 요샌 나타나질 않는다”고 했다. 이젠 아들을 보낼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걔도 잘… 제 갈 길을 갔겠죠…. 감사합니다.”
글=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20년 걸려 ‘징역 20년’ 단죄… “이제서야 恨 풀었습니다”
입력 2017-01-26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