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심정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몸짓

입력 2017-01-26 19:42
지난해 10월 서울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 선보인 마임공연 ‘보름스로 간 루터’의 한 장면. 이 작품의 연출·주연을 맡은 조성진 감독이 낙뢰를 목격한 루터를 연기하고 있다.
조 감독이 교회 어린이들에게 성경 속 이야기를 마임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
독일 남부의 도시 보름스로 향하던 마르틴 루터의 심경은 어땠을까. 그는 1517년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한 뒤 로마가톨릭의 혹독한 탄압에 직면했다.

루터는 1521년 4월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보름스에서 열린 제국회의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와 교황청 특사 앞에 섰다. 그 자리에서 95개조 반박문이 하나님의 양심에 비춰 잘못되지 않았음을 담대하게 증언한다.

"루터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기쁨을 자신의 내면에 묻어둘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번개를 통해 경험한 인간의 나약함, 고해성사를 통해 근원적인 불안을 극복하려 했던 몸부림, 진리의 빛을 가리는 교황에 대한 분노, 교황권력에 맞선 용기를 몸짓으로 표현하기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최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난 ㈔한국영성예술협회 조성진(60) 예술감독은 상연을 앞둔 마임공연 '보름스로 간 루터'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마임이스트인 조 감독은 이 작품의 연출과 주연을 맡았다. 그는 "대구 예촌루터교회에 출석하는 루터교인으로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마임은 사람의 몸을 언어처럼 사용해 소통하는 공연예술이다. 얼굴 표정과 몸짓 하나에 많은 감정을 담아내야 한다. 조 감독이 마임을 처음 접하고 관심을 보인 것은 대학교 1학년 때다. 그는 연세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본래 목회자가 되려했다.

"당시 '종교극회'라는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마임강습을 받아보자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로 온 분이 국내에서 처음 마임영역을 개척했던 유진규씨였습니다. 그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에 매료됐죠. 얼마 지나지 않아 프랑스의 유명 마임 연기자 마르셀 마르소가 첫 내한공연을 했습니다. 이렇다 할 교본 하나 없던 당시에 마임의 원류를 만나볼 수 있는 최초의 기회였죠."

조 감독은 마르소의 작품 대부분을 재현해보고 외웠다. 그런 모습을 본 대학동기들은 "넌 우리가 갖지 못한 재능을 갖고 있다. 목회는 우리가 할 테니, 넌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권했다.

조 감독은 고민 끝에 대학을 졸업한 뒤 문화활동가를 자처하며 연극 연출, 레크리에이션 강의, 축제 기획 등의 일을 했다. 간간이 마임 공연도 했지만 직업으로 택하진 않았다.

공식적인 마임이스트로 데뷔한 것은 37세 때다. 그의 신앙이 영향을 미쳤다. "하나님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사람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몸은 우리의 죄를 씻는 용서의 도구가 됐습니다. 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동창들이 말한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 마임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는 1993년 '천사들 다시 돌아오다'를 시작으로 수많은 마임공연에 출연했으며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아시아마임크리에이션과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국제평화페스티벌에도 초청을 받아 공연을 했다. 한국마임협의회 회장도 역임했다.

그의 마임공연은 교회와 광장 등 삶의 현장에서 펼쳐진다. 지난해 연말에는 광화문광장에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질 것을 촉구하는 공연도 했다. 2014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제99회 정기총회 현장에서 당시 총회 주제인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을 마임으로 형상화해 공연했다.

올해는 종교개혁500주년을 기념해 '보름스로 간 루터' 공연에 매진할 계획이다. 공연은 솔로마임, 연극배우 최문수씨와 조 감독이 함께하는 2인극, 판소리와 함께하는 마임 등 세 버전으로 상연된다. 앞의 두 버전은 지난해 10월 한국마임협회가 주최한 '2016 마임'에서 미리 선보였다. 조 감독은 "교회가 돈과 권력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성장만 지향하는 오늘날, 권력 앞에서도 당당했던 루터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은 적지 않은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한국루터회의 종교개혁 관련 행사에서 주로 공연하겠지만 그 외에도 극장을 대관해 믿지 않는 이들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