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정부 비판적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건의를 받고는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의견을 내가 들어야 하느냐”며 크게 역정을 냈다고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헌법재판소에서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 이후 청와대로부터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문건으로 전달받았다고도 증언했다. 그는 “블랙리스트는 있었다. 그런데 책임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블랙리스트가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장관은 25일 헌재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제9차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무위원 토론회에서 박 대통령에게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시스템은 위험하다. 그것을 벗어나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유 전 장관은 “‘정부 비판적 생각과 의견을 들어야 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을 때, (박 대통령은) ‘그렇다면 대한민국 사람 모두의 의견을 내가 들어야 하느냐’고 역정을 낸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현재 특별검사팀이 수사 중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해 박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을 상세히 증언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6월 청와대로부터 내려온 A4용지 1, 2쪽의 문화예술인 명단을 처음 접했다고 이날 밝혔다. 종이에는 문화예술인 수십명의 명단이 자필로 메모돼 있었다고 한다.
그는 그 다음 달 장관직에서 물러나기 전 박 대통령을 만나 “차별과 배제 행위를 멈춰 달라, 사회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때 박 대통령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고 유 전 장관은 기억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지만 박근혜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은 일부 인사들이 왜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실제로는 문체부 공무원들이 명단에 있는 사람들을 빼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대답했다.
탄핵소추 사유도 아닌 블랙리스트 문제가 특검에 이어 헌재에서도 비중 있게 거론되자 박 대통령 측이 변론에 나서다 꼬이는 장면도 있었다. 박 대통령 측은 유 전 장관에게 “블랙리스트에 있는 사람을 지원하지 말라는 취지가 아니라, 과거 경험이 있으니 자금 지원 시 유의해서 판단하라는 리스트가 가능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주심인 강일원 재판관은 “피청구인(박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인정한 것이냐”고 지적했다. 신문을 받던 유 전 장관도 “저도 궁금한 게, 인정하시는 거죠?”라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 측은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누드화 전시 논란을 언급하며 “우리 국민들이 블랙리스트라는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이에 유 전 장관은 “그 일(지원 배제)을 안 했으면 직무유기가 아니냐는 분도 있는데, 왜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자기가 안 했다고 하느냐. ‘체제를 지키기 위해 이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임무였다’고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朴에 ‘정부 비판 의견도 들어야’ 건의하자 ‘대한민국 모든 사람 의견 들으란거냐’ 역정”
입력 2017-01-25 1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