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병호] 햄버거 회담은 정말 안 열릴까

입력 2017-01-25 17:39

세계는 끊임없이 시끄럽고 갈등하는 것 같지만 지난해와 올해의 상황을 들여다보면 꼭 그런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화해와 봉합, 휴전과 껴안기가 적지 않았다. 대립과 갈등이 지긋지긋했을수록 막판의 화해는 더 빛났다. 반세기 동안 이어진 콜롬비아 내전이 평화의 수순으로 접어든 게 대표적이다. 미국과 쿠바의 화해도 있었다. 전쟁을 치른 미국과 일본의 지도자가 상대국의 아픈 역사의 흔적을 나란히 찾기도 했다.

올해에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다. 6년 시리아 내전이 마침내 휴전 상태가 돼 24일 평화회담이 개최됐다. 첫 회담이 그런대로 잘 돼 다음달 스위스에서 추가 회담을 열기로 했다. 43년째 분단 상태인 지중해 섬나라 키프로스에서도 평화회담이 진행 중이다. 중동 패권을 놓고 오래 대립해온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도 지난 17일 관계 개선을 위한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70년 갈등을 이어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도 평화협상이 시도될 것이다. 이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유대계 사위에게 이-팔 평화협상을 맡기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트럼프는 숙적인 러시아와도 신데탕트 시대를 열려 한다. 그는 취임사에서 “앞으로 ‘새로운 동맹’을 맺어나가겠다”고 했다. 적대국과의 화해, 기존 동맹과의 갈등을 피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이 즈음 우리의 외교 환경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2014년의 충격이 재연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물샐틈없는 한·미·일 대북제재 공조를 자랑하던 그해 5월 일본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과 납치자 문제 논의를 위한 양자협상 개시를 전격 선언했다. 우리 정부는 전혀 몰랐다. 이후 우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대북제재 일부를 풀었다.

그해 11월에는 제임스 클래퍼 미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비행기로 비밀리에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했다. 당시 북한은 억류된 미국인 2명을 석방했다. 그 전후로 북·일 간, 또 북·미 간 반관반민(半官半民) 회담이 수두룩하게 개최됐다. 그해 한국 외교가 뒤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았다는 말이 많았다.

트럼프는 대선 때 김정은 위원장과 ‘햄버거 회담’을 열겠다고 했다. 성사될 가능성이 적다는 관측이 많지만, 그렇다고 평화협정 체결로 체제 보장을 받으려는 북한의 회담 제안까지 트럼프가 거절하리란 보장은 없다. 트럼프식 ‘충격외교’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난달 러시아와의 회담에서 재미를 보지 못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역시 북한에 다시 매달릴 수 있다. 일본이 납치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과 협상을 하게 되면 국정 지지도가 통상 6% 포인트 뛴다는 얘기가 있다. 아베로선 구미가 당기는 ‘외교 먹거리’인 것이다. 아울러 고고도미사일방어체제 사드(THAAD)와 관련해 갈등이 커질수록 중국·러시아와 북한이 더 밀착할 수 있다. 지난해 7월 라오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때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극도로 밀착한 모습에서 그 일단을 엿보기도 했다.

향후 한반도 주변국들이 우리를 제치고 새로운 파트너들과 신 밀월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그냥 앉아서 외교적 파산 상태가 되지 않으려면 먼저 손을 내밀고, 또 적극적인 관계 개선과 교류 증진의 길로 나서야 한다. 그 대상이 북한이어도, 일본이나 중국이어도 좋다. 또 러시아를 상대로 새로운 차원의 북방외교, 또 동남아를 대상으로 남방외교를 펼칠 필요도 있다. 정유년 설이 코앞이다. 한국 외교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되지 않고, 동 트기 전 미리 홰 위로 치솟아 있는 닭이 돼 있어야 할 것이다. 손병호 국제부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