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심 군에게/ 다시 보는 이태리 르네상스 문예부흥기 예술의 극치 미켈란젤로와 다빈치 두 사람은/ 진정 하늘이 내린 화가들이란 걸 재확인했네/ 두 천재의 쉴 줄 모르는 노력의 발자취는/ 나를 몹시 부끄럽게 했고/ 하늘에 용서를 빌 정도 일세.”
1979년 운보 김기창(1913∼2001) 화백은 같이 동양화가의 길을 걷는 아내 박래현, 그리고 아들 부부와 함께 유럽 여행을 했다. 운보가 누군가. 24세이던 1937년 조선미전에서 창덕궁상을 받으며 혜성 같이 등장했었다. 나이 60대 중반에는 완숙기에 이르러 인기 상종가를 쳤다. 더욱이 동양화가 미술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던 70년대다. 그럼에도 당대 한국 최고의 원로 동양화가는 르네상스 대가의 작품 앞에서 하늘에 용서를 빌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다고 자숙했다. 제자인 하진오·심경자 부부에게 미켈란젤로 피에타 사진엽서에 써서 보낸 이 글귀는 김기창의 작품 세계가 작고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심오해질 수 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작가를 본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에게 보낸 엽서 편지 일기 등 그 내밀한 기록이 작가와 작품세계를 더 잘 살펴볼 수 있는 돋보기가 되어 준다. 이력서 졸업장 초청장 전시팸플릿 상장 문서 등은 미술사의 비워진 팩트의 틈을 꼼꼼히 메워주기도 한다. 아카이브가 갖는 이런 힘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 종로구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마련한 ‘작가가 걸어온 길-화가와 아카이브’전이다.
기증 받거나 직접 수집한 아카이브 자료 400여점을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조망하는 전시다. 현재 한국 생존 작가로는 최고 몸값인 이우환 작가가 1968년 일본에서 열린 ‘한국 현대 회화전’에 작품을 출품했다가 모진 비판을 받은 뒤 선배 화가에게 하소연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도 흥미롭다. 추상화가 류경채의 친필 이력서, 해방 후인 1947년 경복궁 근정전에서 열린 조선종합미술전람회 목록은 당시 참가자들의 명단을 수소문할 필요없이 단박에 알려준다. 아카이브 전시라 작품을 볼 때처럼 한번에 ‘심장에 쿵’하는 식의 감동은 없다. 그러나 빛바랜 자료들을 찬찬히 훑어가다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 작가의 삶에 대한 공감과 감동이 스며든다. 4월 29일까지(02-730-6216).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김기창 화백의 미켈란젤로 피에타 사진엽서… ‘운보의 작품세계’ 한눈에 가늠
입력 2017-01-31 00:02 수정 2017-01-3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