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형석 <9> “평양서 일할 생각 없습네까?” 북측 깜짝 제안

입력 2017-01-25 21:19
1995년 4월 남과 북, 해외에서 특별한 삶을 산 세 사람의 실향민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박세록 장로, 납북된 지 43년 만에 돌아온 국군포로 조창호 소위, 필자, 평남 정주 출신 예비역 장성 전제현 장로.

이대로 서울에 돌아가면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막상 옌지에 돌아오니 눈앞이 막막했다. 일단 맹철호 과장의 말대로 베이징 조선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대표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김종운 대표는 그냥 서울로 가지 말고 시간이 있으면 베이징에 한번 들렀다가라고 했다. 북경에서 만난 김 대표는 신문 한 부를 들고 왔다. 우리 일행의 라진 방문 사실을 부인한 조선중앙방송 보도 기사였다.

남북 간에 보도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모든 것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별인사를 했다. 그때 김 대표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런데 혹시 평양 가서 일해 보실 생각은 없습네까?”

그날 오후 김 대표 소개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강덕순 실장을 만났다. “내가 라진에 감찰 갔다가 한민족복지재단이 통 크게 일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라진보다는 평양에서 일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내가 제안했던 것이지요.” 그는 남북관계를 주무르던 실세로 현대의 금강산 사업을 비롯해 국내 대기업들을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라진은 평양으로 진출하는 징검다리였다. 막혀 있던 북한의 문이 열리자 재단에도 기적이 나타났다. 11월 17일 오후 이성희 목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박사. 내가 오늘 이대 채플 갔는데 설교가 3분 일찍 끝나서 재단 얘기를 했더니, 장상 총장이 김 박사를 소개해달라고 하더군.”

다음 날 만난 장 총장은 “얼마 전 KBS TV가 북한 의료실상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평양산원에 근무하는 이화 출신 의사가 출연한 것을 보고 동문들이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송년모임에서 5000만원을 모금할 테니, 평양산원에 필요한 의료기구를 사서 전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바로 2주 전에 ‘아태’ 관계자와 만나 평양에서 의료사업을 전개하기로 약속하고 왔는데, 너무 기가 막히는 제안이었다. 한번 일어난 기적은 연이어 일어났다.

24일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다. 베이징으로 출장 갈 서류를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운영이사회 부이사장인 정정애 권사였다. 밤늦은 시간이지만 너무 중요한 일이어서 전화했다면서, 오늘 오전 10시에 주택은행을 찾아가자고 했다. 전날 재경 광주일고 총동창회 송년모임에 김정태 주택은행장이 참석하자 온통 축하 인사가 그에게 집중됐다. 창사 이래 최대인 4800억 원의 흑자를 기록했다는 보도 때문이다. 그때 총동창회장으로 회의를 주재하던 정 권사 남편 이영일 회장이 “그렇게 큰 돈을 벌었으면 좋은 일도 좀 해야지”라고 조언했더니, 김 행장이 즉석에서 실직가정 자녀들을 위해 1억원, 북한 어린이를 위해 1억원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12월 초에는 장 총장으로부터 다시금 연락이 왔다. 총학생회가 쌀을 모은 후 운동장에서 가래떡을 뽑아서 북한 어린이들에게도 보내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떡국 떡이 무려 20t이었다. 이날 행사를 후원한 농협에서 연말 이웃돕기 행사로 전 직원이 2000원씩 각출해서 마련한 절반을 보내왔는데 그 돈이 5400만원이었다. 떡은 평양시내 소학교에 전달됐다. 계속해서 여러 교회와 학교, 기업으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정리=윤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