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부터 온 ‘아프리카의 봄’

입력 2017-01-25 05:14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평화를 되찾은 감비아 수도 반줄에서 22일(현지시간) 한 시민이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 소속 세네갈 군인과 셀카를 찍고 있다. 지난달 대선에서 패배한 야히아 자메 전 감비아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면서 지지파와 반대파 사이에 긴장이 고조됐다. 아래 사진은 적도기니로 떠나는 자메가 망명길에 오르며 지지자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모습. AP뉴시스
감비아의 독재자가 대선에서 졌음에도 안 물러나고 버티다가 주변국들의 강력한 압박에 백기를 들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사건을 아프리카 민주주의 진전의 증거로 평가했다. 아프리카 곳곳에서는 쿠데타와 독재자 집권의 악순환이 여전하지만 장기집권 독재자들도 어쩔 수 없이 민주적 선거를 치르게 만드는 분위기가 강화되는 것은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감비아의 야히아 자메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밤(현지시간) 비행기를 타고 감비아를 떠나 적도기니로 망명했다. 1994년 쿠데타로 집권(당시 29세)한 뒤 23년간 권력을 놓지 않았던 자메는 지난해 말 대선에서 아다마 바로우 후보에게 패배했지만 불복하고 임기 연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서아프리카경제공동체(ECOWAS)가 군사 개입을 불사하며 퇴진을 요구하자 자메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망명을 택했다.

20일 정오까지 퇴진하지 않으면 군사 개입에 나서겠다고 밝혔던 ECOWAS는 실제로 연합군 병력을 움직여 자메를 위협했다. 나이지리아 가나 세네갈 라이베리아 등 15개국으로 이뤄진 ECOWAS가 강력한 행동으로 독재자를 축출한 것이다.

ECOWAS의 대표 지도자들 면면을 보면 감비아의 민주화에 왜 적극적으로 개입했는지를 알 수 있다. ECOWAS를 이끄는 무함마두 부하리 나이지리아 대통령은 2015년 대선에서 첫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룬 인물이다. 군부 독재자 출신이기는 하나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소중한 선례를 만들었다.

세네갈의 마키 살 대통령은 장기 집권에 집착하는 많은 아프리카 지도자들과 달리 자신의 임기 단축을 제안해 화제가 됐다. 2005년 아프리카 첫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된 엘렌 존슨 설리프 라이베리아 대통령은 201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여성 지도자다.

가나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는 아프리카의 정치 선진국이다. 지난해 말 대선에서 야권 후보 나나 아쿠포 아도가 존 드라마니 마하마 대통령을 꺾고 당선됐다.

이런 사례를 두고 FT는 “과거 쿠데타와 독재의 대명사였던 서아프리카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가장 민주적인 지역으로 변모했다”고 평했다. 한두 나라가 민주주의 실험에 나서면 인접국에 전염되는 현상도 나타난다. 아프리카에서 민주적 정부가 실패한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독재국가보다 문제를 덜 일으키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바람은 젊은 세대가 주도하고 있다. 수단의 기업가로 좋은 정부 만들기 재단을 운영하는 모 이브라힘은 “새로운 세대는 비교적 잘 교육받았고 SNS가 이들에게 보다 나은 플랫폼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나 변호사 출신으로 서아프리카 유엔 특별대표인 모하메드 이븐 참바스는 “감비아에서 20년 넘게 철권통치를 해온 자메 같은 사람도 투명한 선거를 치를 수밖에 없었다”며 “이 지역에서 독재자들이 번성할 공간이 줄어들고 있다”고 강조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