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나누니 더 행복해요… 광주재능기부센터의 특별한 설맞이

입력 2017-01-26 04:29

#장면 1.

따스한 햇살에 이면도로의 잔설이 녹아들던 지난 24일 오후. 광주광역시 봉선동의 유기농 전문매장인 오가닉 빅마트를 찾은 50대 직장인 김모(52·용봉동)씨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외롭게 설을 쇠는 소년소녀가장이나 혼자 사는 노인에게 전해줄 수 있나요? 거래처에서 선물로 받았는데….”

광주재능기부센터가 전개하는 ‘사랑의 명절 선물 나누기운동’에 공감한 김씨가 사과 1박스를 직접 들고 오가닉 빅마트 매장을 방문한 것이다. 하상용(55) 오가닉 빅마트 대표는 환한 얼굴로 감사의 말과 함께 김씨의 소중한 선물을 받았다.

재능기부센터는 명절에 받은 선물 중 1개씩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자는 이색운동을 펼치고 있다. 시민들이 설을 앞두고 집으로 배달된 과일이나 고기, 생필품 중 1개씩을 현물로 기부하면 당사자 명의로 장애인, 미혼모, 다문화가정 등 소외된 이들에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명절 때 힘든 소외계층과 더불어 살자는 이 운동은 해마다 확산되는 추세다. 센터 측은 올해의 경우 2월 4일까지 명절 선물을 기부받는다.



#장면 2.

“1월 25일 수요일 남구장애인복지관에서 떡국 나눔 행사를 진행합니다. 앞서 재능 나눔을 통한 자선 공연을 갖고자 합니다.”(1월 20일)

“문재인 전 대표 부인 김정숙 여사가 방문하셨습니다. 치수가 맞지 않아 못 입는 의류 등을 내놓으며 이런 것도 도움이 되느냐고 수줍게…정치적 중립을 표방하지만 순수 봉사 차원이라고 해서 내부 회의를 거쳐 환영했습니다.”(1월 18일)

광주재능기부센터 인터넷 카페지기 장우철(49) 사무처장의 SNS는 항상 분주하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기부 의사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웃들을 이어주는 가교로서 24시간 가동되는 ‘온라인 상황실’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올 들어서만 동전을 포함한 현금과 전기난로, 신발, 휴대용 청소기, 에어컨, 책상, 의자, 책장, A4용지, 화장지, 천연 라텍스, 프린터, 나무침대, 문화상품권, 장갑 등의 기부가 잇따랐다. 남녀노소 각계각층 가릴 것 없이 크고 작은 정성을 보냈다. 때로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을 도와달라는 간절한 목소리와 얼마 후 이에 반응한 ‘착한 사람들’의 흔적이 담긴다.

“올해 29세 김모씨가 4년형을 선고받고 현재 광주교도소에 수감돼 있는데 고졸 검정고시 관련 책이 필요하답니다. 죄를 뉘우치기 위해 성경을 필사하려는데 볼펜과 노트를 살 영치금 5000원만 넣어주면 좋겠다는….”(1월 9일)

“김씨에게 감사편지를 받았습니다. 영치금으로 250원짜리 볼펜 10자루, 360원짜리 노트 5권을 구입했습니다. 식사 후 비누로 하던 설거지를 주방세제로 하니까 깨끗이 씻을 수 있어서 아주 기분 좋다는…요즘 하루의 대부분은 공부를 하고 성경을 필사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했습니다.”(1월 23일)



광주재능기부센터의 특별한 설맞이가 눈길을 끌고 있다. 2012년 6월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설립된, 전국에서 유일한 광주재능기부센터는 복지 사각지대의 이웃들을 위한 기부 활성화와 공유문화 정착을 선도하고 있다. 올해는 경기 침체와 김영란법 시행으로 기부·나눔의 손길이 줄었지만 이 센터는 변함없이 광주지역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기부·봉사·공유 운동을 펼치고 있다.

“좋은 일을 해보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분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중간에서 묶어주는 복덕방 역할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능기부센터 박미경 사무국장은 “노인들에게 긴요한 치과 치료부터 사랑의 집 고치기와 공부방, 위로가 필요한 1인이나 한 가족을 위한 콘서트 등 재능기부 영역과 방식은 무궁무진하다”며 “돌잔치와 결혼식 때 입는 아기 한복과 드레스, 유모차 대여부터 인생을 마감하는 장례식 절차까지 돕고 있다”고 소개했다. 센터 측은 명절을 쓸쓸히 보내는 탈북자들에게 컴퓨터, TV, 전기장판, 밥상 등을 기증받아 전달하기도 했다.

설을 전후한 연말연시에 벌이는 ‘우리들의 연말 춥지 않아요’ 특별모금 행사도 빠뜨릴 수 없다. 재능기부센터는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이들을 위해 올해도 1월 말까지 모금활동에 나섰다. 5000원 이상 후원자들에게는 사용처와 영수증 등을 사진으로 찍어 휴대전화 문자, 이메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수시로 보내고 있다.

2015하계유니버시아드를 치른 광주 진월동 국제테니스장 관중석 하단의 널찍한 공간으로 이사한 재능기부센터는 공유문화 확산의 전초기지 역할도 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최초로 개장한 부설 광주공유센터를 구심점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정보·공간 등 자원과 자산의 사회·경제·환경적 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꾸준히 벌이고 있다.

“기부와 공유는 단순히 돈이나 물품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악기 연주와 노래실력, 기업운영 경험 등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남을 위해 즐겁게 쓸 수 있으면 됩니다.”

재능기부센터는 시내버스 종점 대기소에서 잠시 쉬는 버스기사와 이른 새벽 길거리를 깨끗이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등을 위한 깜짝 문화공연도 이따금 선보이고 있다.

재능기부센터 박 사무국장은 “중고 전자제품이나 쌀, 연탄도 좋지만 외국어 구사 능력을 활용한 통역이나 번역도 언제든 환영한다”며 “기부 행렬과 공유문화 활동가들이 늘어나 살맛나는 명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