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담양 금성산성, 소담스러운 눈 속에 아늑함과 포근함이…

입력 2017-01-25 18:47 수정 2017-01-25 20:57
전남 담양군 금성산성을 찾은 산행객이 서문으로 향하는 성곽길에서 하얀 눈을 뒤집어 쓴 보국문(오른쪽)과 충용문으로 이어진 항아리 모양의 산성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고 있다. 그 너머로 담양의 너른 들판이 한 폭의 수묵화를 펼쳐놓고 있다.
눈꽃을 입은 환상적인 나무터널 속으로 연인이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다.
노적봉에서 바라본 철마봉(오른쪽)과 담양호
고즈넉한 창평 삼지내 마을 돌담길
겨울다운 추위가 이어지고 있다. 겨울여행을 어디로 떠날지, 무엇을 보고 즐길지 고민하고 있다면 전남 담양이 안성맞춤이다.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는 옛 성곽에 오롯이 배어 있는 역사를 느끼고 따뜻한 온천에 몸을 녹이면 더할 나위 없는 여행이 된다. 때맞춰 하얀 눈이라도 내리면 추위보다는 솜이불 같은 포근함과 아늑함이 느껴진다. 겨울 남도로 떠나보자.


금성산성은 담양군 용면 도림리와 금성면 금성리, 전북 순창군 경계에 걸쳐 있다. 연대봉(해발 603m)과 시루봉(504m)·철마봉(476m) 등 산성산의 산봉들을 잇는 능선을 따라 늘어선 약 6.5㎞의 돌성이다. 내아터가 있는 내성까지 합하면 성의 총길이는 7.3㎞다.

험준한 지형에 축조된 데다 주변에 높은 산이 없이 낮은 산들로만 둘러싸여 있어 성 안쪽을 전혀 관찰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다. 장성의 입암산성, 무주의 적상산성과 함께 호남의 3대 산성에 포함된다. ‘고려사절요’ 등 여러 기록에 비춰보면 고려 중기 이전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말기엔 성 안에 130여 가구의 민가가 있었고, 관군까지 2000여명이 머물렀다고 한다. 29개의 우물을 파고, 2만여석의 군량미를 저장했을 정도였다지만, 동학농민혁명, 6·25전쟁 등을 거치며 마을과 관아 등이 소실되고 터만 남았다.

성문과 성곽에는 천년 세월 모진 풍파에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서있는 산성의 기세와 선조의 기개가 서려 있다. 왜구로부터 전라도 땅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산성을 따라 수없이 뛰었을 의병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의 피를 토한 격문도 어딘가에 배어있으리라.

임진왜란 당시 금성산성 전투가 끝나고 왜병이 물러간 뒤 의병과 농민, 왜병의 시신을 계곡에 모았는데 무려 2000구에 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계곡은 이천골(二千骨)이라 불린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치 전투에서 대패한 전봉준은 이곳에서 관군과 맞서 20여 일간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떨어진 식량 조달을 위해 전북 순창 쌍치에 사는 동지 김경천의 집을 찾았다가 김경천의 밀고로 체포됐다. 하지만 동학농민혁명군은 마지막까지 왜군과 관군에 저항했다. 치열한 전투로 성내 시설물이 대부분 파괴됐고 불길이 백일동안이나 계속됐다고 한다.

주차장 인근에 성의 남문으로 오르는 산길 들머리가 있다. 40여분 오르면 우뚝 솟은 성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먼저 마주치는 문이 외남문(보국문)이다. 성 밖 관찰을 쉽게 하고, 적의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새의 부리처럼 튀어나오게 쌓은 성곽 끝부분에 있다. 이곳을 지나 내남문(충용문)으로 향한다.

충용문 망루나 노적봉으로 이어진 성벽 위에서 내려다보는 보국문 쪽의 성곽 풍경이 환상적이다. 내부로 들어오는 적을 쉽게 타격하기 위해 입구가 항아리처럼 둘러싸여 있다. 흰눈에 덮인 성곽은 산 능선을 따라 저 멀리 달아나고 망루 위 검은 기와에 내려앉은 하얀 눈은 흑백의 대비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 너머로 담양의 너른 들판도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낸다.

성을 둘러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성곽을 따라 성 전체를 한바퀴 도는 것과 성 안쪽 길을 따라 들어가 가까운 문을 거쳐 성곽을 따라 내려오는 것이다. 성을 밟으며 돌면 등산과 시원한 전망 감상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길이 가파르고, 적잖은 시간이 걸린다.

먼저 성곽을 따라 돌아본다. 서문 쪽으로 발길을 잡으면 노적봉이 반긴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수많은 아픔의 역사를 고스란히 목격한 심지 곧은 소나무의 모습이 멋지다. 멀리 우리나라 지도를 거꾸로 놓은 듯한 독특한 모양을 한 담양호 너머로 추월산이 솟아 있다. 철마봉으로 이어지는 길은 뱀처럼 휘감아 오르며 수묵화에 느릿한 풍경을 더해준다. 철마봉에 오르면 담양호와 무등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충용문에서 성 안쪽 길로 들어서 왼쪽으로 가면 보국사(금성사)터가 있다. 오른쪽 길은 동자암이라는 민가와 내성을 거쳐 동문으로 이어진다. 동문으로 나가면 순창 강천사 골짜기로 내려서게 된다. 금성산성 들머리에서 강천사까지는 약 2시간 거리다.

산길이 버겁다면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는 길도 있다. 바로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과 창평슬로시티다. 여름철 시원한 나무숲도 좋지만 하얀 눈 속에서 갈색빛을 내는 겨울 숲길, 고색창연한 마을 돌담길도 운치 있다. 한 폭의 동양화 속으로 걸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원뿔 모양으로 치솟은 메타세쿼이아가 양쪽에 도열한 메타세쿼이아 길에서는 눈길을 천천히 밟으며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나무가 울창한 여름이나 가을 단풍 길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하얀 눈꽃을 입은 환상적인 나무터널 속에 들어서면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동화 속 세상을 만난 듯 착각에 빠질 정도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인 창평 삼지내 마을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움직여야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느릿하게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곳에서 뭇 사람들을 위해 바람을 막아주는 돌담길을 따라 걷다가 관광객을 위해 열어놓은 고택에 들어가 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면 유난히 높고 푸른 하늘빛이 눈안에 담긴다.


[여행메모]

금성산성 일주 코스 4시간가량 소요

산행 후 인근 온천탕에서 피로 회복



금성산성에 가려면 광주대구고속도로 순창나들목이나 담양나들목에서 빠져 2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원율삼거리에서 담양온천리조트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리조트 직전에 우회전하면 매표소가 나온다. 주차료 2000원을 내고 500m쯤 가면 금성산성 주차장이 나온다. 담양리조트 옆에도 금성산성으로 오르는 길이 열려 있다.

산성을 둘러보는 코스는 충용문에서 동문→북문→서문→충용문으로 이어지는 일주 코스가 주 코스로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가파른 길을 피해 북문에서 보국사 터→남문으로 빠져도 된다. 2시간 30분 소요. 남문→서문→철마봉→남문 코스나 남문→동문→보국사 터→남문 코스는 1시간 30분 정도로 다른 코스에 비해 짧은 편이다.

성곽 길은 산행로 겸 역사문화 산책로 구실을 한다. 성곽 중간중간에 망대가 있어 전망도 좋다. 서쪽 철마봉이나 노적봉에 오르면 담양호가 내려다보인다. 건너편 추월산도 시야에 잡힌다.

담양온천리조트에서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풀 수 있다. 2003년 7월에 개장한 리조트는 온천단지와 관광호텔 구역으로 나뉜다. 온천단지에는 노천탕, 침탕, 녹차탕, 대나무숯사우나, 옥사우나 등 10여 가지 기능성 탕과 사우나가 들어선 대온천탕, 가족끼리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가족온천탕, 야외수영장 등이 있다. 스트론튬, 황, 리튬 등을 함유한 알칼리성 단순천으로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담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