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법원 문턱 넘으려 ‘뇌물죄’ 판례 분석 중

입력 2017-01-25 05:07
박근혜 대통령의 수뢰 혐의를 수사 중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근 법원의 뇌물사건 판례경향 분석에 돌입했다. 수험생들이 ‘기출문제’를 풀듯 구도가 비슷한 사건들을 뽑아 이번 사안에 대입해가며 시뮬레이션 중이다. 대부분 뇌물죄의 ‘대가관계’ 또는 ‘부정한 청탁’이 쟁점이 된 사건들이 분석 대상이다. 특검 관계자는 24일 “수사 시작 단계부터 비슷한 구조의 사건과 판례들을 훑어보고 있다”고 말했다.

특검 수사팀 관계자들이 최근 유심히 보는 사안은 최철국 전 민주당 의원 뇌물 사건에 등장하는 여러 범죄 중 일부다. 2005년 소방시설 생산업체 대표 김모씨는 공공기관 판로 개척을 위해 당시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속이던 최 의원에 접근했다. 김씨는 최 의원과 친분이 있던 경남의 한 사찰 주지 신모씨를 뇌물 경유지로 삼았다. 최 의원에게 뇌물로 공여할 목적으로 3500만원을 신씨에게 건넸다. 김씨와 신씨는 각각 제3자 뇌물교부와 제3자 뇌물취득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 대통령에게 공여할 목적으로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지원했다는 특검 수사와 구도가 비슷하다. 특검은 현재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한 204억원과 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지원한 16억2800만원을 이 부회장의 제3자 뇌물공여로 본다.

제공한 자금이 뇌물이 아니라 단순 기부금이라는 항변도 두 사안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당시 법원은 평소 신씨가 김씨에게 최 의원을 도와주지 않겠느냐는 말을 자주 했고, 돈을 받은 계좌에서 인출된 수표가 최 의원의 가족에 의해 사용된 점 등을 들어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이 이 부회장 영장기각 이후 삼성전자 황성수 전무와 장시호씨 등 실무진을 재소환해 조사한 이유도 최씨 측에 건네진 돈의 성격이 뇌물이란 점을 보강하기 위한 차원으로 읽힌다.

이 부회장 영장기각 사유 중 하나였던 뇌물의 대가관계(또는 부정한 청탁)에 대한 법리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김황식 전 하남시장 수뢰후부정처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 시장은 2006∼2008년 박모씨로부터 자신의 소송과 관련된 변호사 선임비용 등 각종 편의를 제공받은 뒤 박씨가 청탁한 특정인이 하남시 내 LPG충전소 사업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혐의로 2015년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김 시장의 수뢰후부정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대가관계에 관한 양해가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당사자 사이에 존재해야 한다”는 뇌물죄 기준을 제시했다. 그런 양해 없이 단지 정치적 지원자가 추후 보상을 받을 것이란 일방적 기대를 갖고 정치인을 지원했다면 사후에 청탁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직무행위에 대한 대가로 볼 수는 없다는 설명이다.

이런 기준은 현재 이 부회장 측의 반박 논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이 부회장 측은 특검이 뇌물을 대가로 보고 있는 삼성그룹 승계 지원과 삼성의 최씨 지원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최씨 측의 강요에 의해 지원금을 냈을 뿐 박 대통령으로부터 특정 대가를 바란 행위는 아니라는 것이다. 특검은 박 대통령 대면조사 등을 통해 대가관계를 입증한다는 계획이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